# 세상에서 제일 큰 도화지

독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길거리 그림> : Straßenmalkreide

by 독한아빠

어제보다 한 뼘 더 자란 꼬마 친구들에게



"아빠 저희끼리 나가서 놀아도 돼요?"

솔직히 아빠는 그 말이 '사알~짝' 고마웠어.


얼마나 지났을까?

차고 옆 도로에서 놀고 있는 너희들을 보고

아빠는 그만 깜짝 놀랐단다.


도로 위 한가득 너희들이 그려놓은 멋진 세상이 있더구나.

공주의 성도 있고,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도 있고,

시훈이가 좋아하는 공룡도 있고,

달과 별이 반짝이는 우주도 펼쳐 있고 말이야.


독일 아이들은 도로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Spiel mit Straßenmalkreide)


사실 아빠도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단다.

'나를 닮아서 그런 건가?'

잠깐 착각할 뻔했는데, 다행히 금방 깨달았다.

아빠는 별로 '창의적'인 사람이 못 되거든.

너희가 가진, 너희만의 특징인 게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고슴도치의 자식 사랑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대도 어쩌겠냐? 부모는 다 조금씩은 팔불출이야!


그럼 이번 주말에도 우리 시간 한 번 내서

다시 도로로 나가볼까?

이번에는 아빠까지 가세해서

온 도로에다 멋진 그림을 한 번 그려보는 거야?

도화지는 충분하니까!

어때? 아빠도 끼워줄 거지?


너희들의 사생팬 아빠가





원래 좋은 부모가 어딨나? 너무 자책하진 말자.


유럽을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독일도 아이들의 외부활동이 많이 제한되었다.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의미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 솔직히 많이 힘들어진다. 금방 피로해진다. 피로하면, 쉽게 짜증이 나고, 짜증을 한바탕 쏟아낸 뒤에는, 자신의 이상과 다른 '나쁜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내 생각에 좋은 부모란 세상에 아예 없거나, 아니면 반대로 거의 다 좋거나 둘 중에 하나지 싶다.


그냥 부모의 성품은 체력이라 보면 거의 쉽지 않을까? 여하간 그래서인지, 아이들끼리 밖에서 놀겠다고 이야기해주면 그게 그렇게 고맙다. 덕분에 오늘 밤에는 녀석들에게 좋은 부모인 '척' 해볼 수 있겠다.


부모가 '완벽한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 너무 자책하진 말자



도로 위에 그려 놓은 아이들의 세상


한참을 밖에서 놀았는데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집이 시골 구석에 있고, 원체 외부에서 분리된 안전한 구조의 건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슬며시 궁금해졌다.


내가 다가갔을 때도 인기척을 못 느끼고 세 꼬맹이들은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끄적거리고 있었다. 큼지막한 색깔 분필로 도로에다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다가갈수록 기가 막힌 그림들이 등장했다. 금세 멋진 세상이 펼쳐졌다. 또 고슴도치 새끼 자랑이겠지만, 도로 위의 피카소가 따로 없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도로 위에다 그림을 그려놓으면, 이웃 사람들이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혼낼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도리어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을 그린 건지 물어보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는 엄지를 '척'하니 내보이곤 "너무 멋지다. 예쁜 그림 그려줘서 고마워" 하고 돌아간다. 아이들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더 밝게 빛난다.







어쩌면 모든 아이들은 천재가 아니었을까? 부모의 간섭이 없었을 때에는?


우리 집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조그마한 흰 여백이라도 보일라치면 여기저기 끄적끄적 작품 활동에 몰입한다. 이제 스케치북이나 연습장 정도로수용하지 못한다. 옆집에서 오래된 벽지를 얻어다가 아이들에게 던져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어제까진 고흐처럼 캔버스에 그리더니 오늘은 미켈란젤로처럼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만 그럴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맘 때 자기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라고.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그저 그런 농담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나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정말로 천재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더 잘해줘야지, 더 멋지게 키워야지'


어쩌면, 이런 부모의 깊은 관심과 개입을 통해 아이들의 천재성이 점차 사라진 것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이 도로에 그려놓은 그림들은 하나같이 멋있었다. 아주 큰 그림부터 아주 작은 그림까지. 의미 없어 보이는 낙서와 같은 선들의 모양도 독특하니 예뻤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아이들과 있었다면 아마 이런 그림이 완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우상하가 정해져 있고, 주인공과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그런 평범한 그림을 그렸을 공산이 컸다.


아이들의 그림이라서 좋았다. 자유롭고, 재미있었고, 힘이 있었다. 아이들의 개성을 계속해서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빠져야지! 대신 도화지며, 색연필이며, 물감이며, 분필이며, 표현할 수 있는 재료들을 많이 날라줘야겠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실컷 원 없이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그래서 내가 알려준 세상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그 세상을 구경 한 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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