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서야 하나님은 '준비'되었다고 말하시네 (모세의 이야기)
내가 가진 것이 모두 사라질 때
나는 부모가 기독교인이라서 기독교인이 된 모태 신앙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내 기억에, 많은 목회자분들께서 ‘준비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과 동등한 자리에 두고 교육하셨던 것 같다.
성경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모세의 인생을 보면 참 흥미롭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직접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께서 직접 인도하시는 대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나는 그 사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적어도 모세의 경우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과 조건이 사라졌을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사용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도리어 아무 준비도 되지 못한 상태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이 사용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모세는 그 인생 처음 40년 동안 이집트의 왕자로 컸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행7:22)
모세는 당시 근동지역의 최고 강대국이자 선진국이었던 이집트의 왕자였다. 이집트의 모든 학식을 배워 지적인 능력도 탁월했고, 웅변이나 설득에도 능력이 있었다. 어느 역사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모세는 장군으로서도 큰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성정이 불같아서 불의한 이집트인을 죽이기도 했으니 굳이 사료를 찾지 않더라도 강한 무력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모세는 문과 무, 모든 영역에서 능력적으로 탁월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행7:23~25)
그뿐 아니었다. 모세는 자신은 이스라엘 사람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분명히 자각하고 믿고 있었다. 아마 히브리 유모였던, 생모 요게벳을 통해 교육을 받았던 것일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히브리 민족의 구원’, ‘탈애굽’의 소명을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분명한 소명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그를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셨다.
이후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한다. 거기서 다시 40년을 보낸다. 모세는 80이 되었다. 젊고 능력 있던 이집트 왕자는 이제 늙고 쇠약해져 있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4:10)
이 말이 핑계가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면, 출중했던 그의 능력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물론 이 말이 핑계라 하더라도 결과는 다를 바 없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3:11)
설령 육체적으로 노쇠하였을지라도, 재능은 사라졌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소명과 믿음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충분히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의 소명도 잃어버렸음이 분명했다.
광야에서 보낸 40년 동안 그는 무수히 자신의 떳떳했던 삶을 돌아보고 반성했을 것이다. 그토록 확신했던 하나님의 비전이 자신의 삶에서 철저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자’, ‘탈애굽’의 소명의식은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 싶다.
그는 늙었고, 그는 능력이 없었으며,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도 상실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었고, 바야흐로 ‘하나님의 일꾼’으로써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사례를 통해 더 약해지고, 더 부족해지고, 더 모자라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도리어 약하든 강하든, 부족하든 넘치든, 모자라든 능력 있든, 어떤 것이든 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저 하나님 뜻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믿을만하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모두 사라진다. 내 능력이 사라지고, 내 소명이 사라지고, 내 자아가, 내 자존감이 무너진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미쁘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더 정확히 우리의 잘못 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상태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과 관계없이 우리를 사용하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