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런 나를 최고라고 하시네 (스룹바벨 성전의 비유)
성전(聖殿).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던 곳. 하나님이 임하셨던 곳. 인간과는 구분된 거룩한 곳. 신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공간.
때문에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전은 감히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고, 범접할 수 없어야 하는 존재였다. 가능한 화려해야 했고, 가능한 웅장해야 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여겼다. 오늘날 한국 대형교회들이 수백억을 들여 교회당 건물을 치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싶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성전은 총 세 번에 걸쳐 수축되고, 또한 모두 무너졌다.
제1성전.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황금기로 알려진 솔로몬 왕 시기에 준공되었다. 비교가 불가능한 가장 화려한 성전이었을 것이다. 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 시절 파괴(B.C.586)되었다.
제2성전.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다리오 왕의 포로이던 시절(B.C.515) 만들어졌다. 이 성전의 별명은 ‘스룹바벨 성전’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힘겹게 재건되었다. 로마 폼페이우스에 의해 파괴(B.C.63)되었다.
제3성전.
가장 웅장했던, 거대했던 성전이었다. 로마 속국 시절 헤롯에 의해 건축되었다. 헤롯의 재위 18년(B.C.20)째부터 만들어져서 그의 사후(A.D.64)까지 약 84년 간 만들어졌다. 그러나 디투스에 의해 이내 무너졌다(A.D.70).
가장 화려했던 제1성전. 가장 웅장했던 제3성전.
그에 반에 제2성전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성전 준공식에 참석했던 많은 백성들이 크게 울었다고 전해진다. 너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딱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학2:2~3)
그런데 내가 꼭 그렇다. 내 처지가 꼭 스룹바벨 성전 같다.
나는 홀로 힘들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힘든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믿고,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얻은 결과물은 영 신통치 않다. 내 상황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형통하지 못하다. 초라하기 그지없다. 앞으로도 그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은 크게 들지 않는다.
그래, 나만 그렇게 산다면 속은 상하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다고 퉁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이 볼 때 어떨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어느 누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겠는가? ‘네 꼴이 그 모양인데, 하나님이 무슨 능력이 있냐?’ 하나님도 함께 조롱받는 것 같다.
그럴 때면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딱하고, 더욱 초라해 보인다. 마치 스룹바벨 성전과 같은 모양으로 겨우겨우 버티어 서있는 모양새다.
스룹바벨 총독도 제사장 여호수아도 그 성전이 얼마나 초라한 모양새로 세워지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고 있었을 것 같다. 다른 백성이 성전을 보고 슬퍼 눈물을 흘렸을 때, 그들도 속으로는 통곡했을지 모른다. 그들도 분명 지금의 나처럼 답답했을 것이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이 행동하고 있을까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도 알고 계셨다.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들을 직접 위로해주셨다. 직접 격려해주셨다. 용기를 심어주셨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4)”
뿐만 아니었다. 하나님은 초라하게 세워진 성전을 이렇게 평가하셨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9)
그분께서는 그 어떤 건축물보다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볼품없는 스룹바벨 성전이 더 영광스럽다고 하셨다. 그분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웅장했던 헤롯 성전의 영광보다 초라했던 스룹바벨 성전이 더 영광스럽다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비록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이 가진 풍부한 금과 은은 없었지만, 헤롯이 가진 거대한 권력과 능력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감동으로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초라함을 아름답게 받으셨다. 그 볼품없음을 영광으로 받으셨다.
하나님을 따를 때 형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도 분명히 있다. 하나님을 따를 때 큰 성취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성취가 있을 때도, 혹 없을 때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때도, 혹 얻지 못할 때도.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직접 위로해주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포기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는데, 다시 용기를 내어 본다. 나의 초라함을 솔직히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여전히 아파서 끌어안기 힘든데, 다시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 믿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