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한 가지 비유
나는 한동대학교를 나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70% 정도의 학생들이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때문에 밤이 되면 친구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찜닭, 치킨 같은 야식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참 많이도 나누곤 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주제는 취미, 공부, 이성교제 같은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부터였다. 그런 이야기들은 계속 가지를 쳐나가고, 살을 붙여 나가다가 거의 대부분은 신앙 이야기까지 넘어갔던 것 같다. 깊은 밤에 모두 피곤해질 때쯤 이야기는 끝이 났고, 아무 결론도 내지 못했지만 매번 만족스럽게 헤어졌다.
이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사소한 것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지난밤 그 신앙적인 고민들과 나눔들은 부지중에라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형성하였으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한 선배의 '비유'만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대범아, 나는 신앙생활이란 것이
마치 어두운 밤에 차를 운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네가 만약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에
이곳 포항에서 서울로 간다고 생각해보자.
너는 어떻게 갈 수 있을까?
포항은 남쪽에 있고,
서울은 포항보다는 북서쪽에 있다지만,
그 방향만을 고집해서
계속 북서쪽으로만 방향을 잡고 간다면
너는 결코 서울에 도착하진 못할 게다.
필경 산에 막히거나
절벽에 막히거나
막다른 곳에 도달하지 않겠니?
어떨 때는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방향을 잡아가야 할 때도 있고,
또 어느 경우는 완전히 반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길이란 원래 그렇게 구불구불한 법이야.
서울로 가는 모든 길을 알아야만 갈 수 있을까?
아니야.
이 세상에 모든 길을 알아야만
비로소 떠난다는 사람은 없지.
서울로 가는 방법도 얼마나 많니?
수 백, 수 천 가지의 다른 길이 있어.
어떤 때는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고 순탄하게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떤 때는 비포장 도로 위처럼
힘들고 느린 길도 분명히 있을 거야.
느리고 험한 길은 잘못된 길일까?
아니. 꼭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길도 서울로 가는 길인건 분명하잖니?
어려운 길이라 말할 수는 있겠지만,
잘못된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
네가 가고자 하는 곳을 잊지 않으면 족해.
방법은 혹 달라져도 관계가 없어.
빠른 길이든, 느린 길이든,
편한 길이든, 불편한 길이든,
그런 선택이야 몇 번이 바뀌든지 큰 문제가 될까?
도착 시간이 혹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어떤 길이든,
서울로 가는 길이라면
마침내 너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게다.
서울을 가는 사람은 서울로 가야지.
'서울'이란 인생의 목표는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각각의 인생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기어코 완성해야 할
각자의 '사명' 말이다.
어떤 방식일지 알 순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방향을 계속 점검해야만 할 거다.
모든 길들이 한 번에 보일까?
아니, 그것도 아니야.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에는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곳까지만 볼 수 있어.
보이는 곳까지 나아갈 때
비로소 다음 길이 보이는 것이거든.
성령이 '조명'하신다고 말하잖아.
나는 이 말이 무척 좋다.
조명해주시는 곳까지만 갈 수 있는 법이야.
여전히 눈 앞의 세상은 깜깜하여
쉽게 그 길을 확신할 수 없다만,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곳까지만
믿고 나아가면
다음 길은
반드시 보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운전을 할 때는
당연히 앞을 보고 달려가야지.
하지만 이따금씩은 꼭 뒤를 보아야 한단다.
그래야 안전하거든.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야.
이따금 자신의 과거와 역사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꼭 반추해 보아야만 해.
우스운 말이지만 내 경우엔
지금 이 순간에는 대개 불평만 하는데,
뒤를 돌아보면 감사할 일뿐이더라고.
그때 당시에는
도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믿음으로 해결해왔음을 느낀다면
여전히 깜깜한 밤 길도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 나아갈 갈 용기를 얻곤 한단다.
대범아, 그래서
나는 신앙생활이란 것이
마치 어두운 밤에 차를 타고
운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단다."
문득 그 시절 한 선배의 비유가 떠올랐다.
그래. 신앙생활은 어느 때나, 어디에서나 어두운 밤 길을 가는 것 같은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어두운 밤이 지나서. 아니,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를 지나야만 비로소 여명을 기대할 수 있다. 찬란한 아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 나의 미숙했던 그 과거 속에도 언제나 함께 해주셨던 '나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순간도, 언제나처럼, 나와 같은 차에 타 주실 것을 신뢰하며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