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의 빠른 일상에 자신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땅바닥에 머문다.
'조금이라도 눈을 위로 쳐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속도가 늦춰진다면, 이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진 않을까?'
이런 비슷한 종류의 불안감 때문이리라.
2010년, 여름방학 기간에 한 일주일 동안 홍콩과 상하이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즈니스, 금융시장의 중요 도시이기에 건물들이 화려하고 찬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이 내 머리에 각인된 모습은 그들의 '분주함'이었다.
시간이 곧 돈인 그들에게는 (당연하게도) 주위에 대한 관심과 신경은 사치였던 모양이다. 어리숙한 여행객이 혹시라도 말을 섞을까 고개만 돌리면 정색을 하며 'No, Thank you(안됩니다)'를 연발해댔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뛰 듯, 내 곁을 지나갔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시선도 매번 발끝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바쁜 사람들로 북적이는 홍콩 거리. 비단 홍콩뿐일까? 세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https://www.pexels.com/)
그 이후부터 이 생각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하루, 단 한 번이라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늘을 바라본 일이 있을까?
그저 눈으로 스치듯 지나치는 하늘이 아니라, 아주 잠깐이라도, 우두커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 일이 있을까?'
그리고 그 이후부터 막연하게 확신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만약 하루 한 번이라도 하늘을 제대로 올려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 사람은 참 행복한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일 거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집 앞의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높지 않은, 넓은 '하늘'을 만나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을 하지만~'
어느 동요의 가사처럼, 한국에서 바라보았던 하늘은 언제나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독일의 하늘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넓다'는 생각부터 든다. 아니 너무 넓어서 그런지, 높다는 생각까지 도무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처럼 높고 가파른 산들로 병풍 치지 않아서일까? 평지나 완만한 구릉들로 이루어진 독일 마을에서는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 필요가 없다. 눈 앞에 이미 하늘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하늘을 보면 심지어 참 가까이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하늘이라도 사람들에게 쉽게 자신을 범하도록 허락하진 않았다. 한국의 하늘이 그 높음으로써 자신의 숭고함을 유지했다면, 독일의 하늘은 그 넓음으로써 그리했다. 사람들이 한 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비록 '올려다보는' 수고는 할 필요 없었지만, 반드시 '돌려다 보는' 수고는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비록 가까이 있는 듯 보이나, 인간이 쉽게 닿을 수 없다는 것에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매 한 가지였다.
하늘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하늘인 법이다. 그래서 참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래서 참 경이롭다고 느껴졌다.
넓은 평야 위에서 야크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건너편에는 나무가 빼곡한 숲이 이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위로 도무지 한눈에 담을 수 없는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지금 머리 위의 하늘, 이제 곧 다가올 하늘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수 시간 후 날씨를 쉽게 가늠하곤 한다. 가령 지금은 해가 쨍하니 비치는데, 대뜸 '한 시간 뒤에 비가 올 것 같네. 지금은 산책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한다거나 또는 갑자기 쏟아진 비로 처마에 피해 있는 나를 보고 '곧 비가 그칠 거야. 조금만 기다렸다가 돌아가면 돼.'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 그 말들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넓은 독일 하늘이 주는 재미. 가운데 차량의 프레임을 기점으로 왼편과 오른편 하늘의 자태가 전혀 다르다. 왼쪽에는 푸른 하늘이 비치는데, 오른쪽엔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독일의 하늘이 넓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둘러싸인 산들로 인해 바로 위의 하늘밖에는 볼 수 없지만,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먼 곳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어떤 하늘이 곧 내 머리 위로 올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내 머리 위의 하늘이 폭우를 쏟아내고 있지만, 저 멀리 푸르게 빛나고 있는 하늘이 곧 내 머리 위로 다가올 수 있다. 지금 내 머리 위의 하늘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저 멀리 비바람을 가득 담은 검은 하늘이 곧 내 머리 위에 닥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현재가 고통스럽다고 희망까지 놓아선 안되며, 현재의 잘 됨만 바라보고 마냥 자만하여서도 아니 된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기에, 지금 내 머리 위에 없기 때문에 그 하늘의 존재를 믿기는 어렵고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그 실존까지 부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의 폭풍우 내리는 하늘 속에서도, 저기 건너편 햇빛이 찬란히 비치는 하늘이 동시에 존재함을 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이내 나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희망이나 약함이 아니다. 독일의 하늘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