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라서, 못해서,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 같아!
자녀 셋, 나는 35살 독일 대학생이다
내 나이 서른다섯. 나는 '모험적 경험을 통한 청소년 교육(Abenteuer - Erlebnis Padägogik)'이란 주제로 석사 공부를 하고자 독일에 와있다.
어린 세 명의 자녀까지 모두 데리고서.
모험과 도전을 통해 배우는 경험 교육 모델 (*출처: http://step-stiftung.de/)
참고로 독일의 대학생들은 한 달에 한화 약 50만 원 이상의 수익활동은 할 수 없다. 법이 그것을 규제하고 있다. 학업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물론 좋은 뜻이긴 한데, 아이가 셋이나 딸린 가장에게 적용하면 그것은 아주 터무니없는 조건이 된다.
'부끄럽지 않으냐?' 그 질문이 나를 때렸다
그럼에도 이 무모한, 혹은 미련한 독일행을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아이들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아이들에게 남겼던 내 말 때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한 교육단체에서 청소년 지도자와 상담자로서 8년 정도 일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아이들에게 늘 이런 말로 도전하곤 했더랬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너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살아라."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나의 부족함을 보았다.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중요한 자극을 주기엔 나의 능력과 지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찔렀다.
그즈음 마부르크 필립스 대학의 <경험과 모험 교육 석사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나의 부족을 채울 수 있을 듯한 교육의 기회가 독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동안 아이들에게 던졌던 확신 가득했던 말들은 날카로운 질문이 되어 다시 내게로 날아왔다.
<그래서 넌 오늘 행복하니?>
<그럼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그렇게 할 용기가 넌 있니? 자신에게 떳떳해?>
솔직히 답할 수 없었다. 늘 앵무새같이 반복했던 대답들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그것을 내 입으로, 내 삶으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이런 작은 소리가 목 아래를 조심스레 긁었다.
'나는 아빠잖아. 나는 가장이잖아. 어쩔 수 없잖아.'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 앞에서야 늘 입에 발린 '정답'을 짐짓 자신 있는 모습으로 이야기하곤 했지만, 정작 나는, 내 삶은 그것을 피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내 속에 있는 확신과 힘이 쭉 빠져나갔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저 더 이상은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마음뿐.
아비의 실수가 아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그렇게 독일로 떠나왔다. 아무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서 실은 지금도 좌충우돌하는 중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은 아마 그런 아빠의 실수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있을 사람일 터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런 아빠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어려움이나 장애가 되지 않고, 도리어 희망과 편안함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만 정답이 아니야.
때로는 꿈을 좇아 무모하게 살 수도 있는 거지.
마치 우리 아빠처럼 말이야."
나는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지온, 하온, 시훈이에게
얘들아, 아빠는 가끔 생각한단다.
인생은 어쩌면
'아주 깜깜한 밤 길을 운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밤은 깊고, 길은 구불구불하고, 가야 할 목적지는 아직도 아득한데,
보이지 않는 사방을 더듬지 않고서는 한치도 나아갈 수 없는 그런 밤 길 말이야.
그런 길을 운전을 하다 보면 아마 이런 생각부터 나겠지?
모든 길이 다 보이면 더 쉬울 텐데...
길이 구불구불하지 않으면 더 쉬울 텐데...
그런데 얘들아.
그리 길지 않았던 아빠의 삶을 통해
아빠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
모든 길을 알거나, 길이 너무 똑바를 때면
운전이 도리어 더 피곤해지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야.
긴장할 것이 전혀 없는 곳은
편안한 곳이 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위험한 곳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둑 컴컴, 구불구불, 무서운 길에선
때로는 전조등이 비추인 곳에서 새로이 발견하는
길을 찾는 기쁨도 있고,
아빠 혼자 피곤하지 말라고
뒤에서 재잘재잘 응원해주는 너희들도 있어
도리어 안전하고 즐거워지기도 하지.
그래, 어쩌면...
우리 인생은 이런 밤 길을 운전하는 게 맞을지 몰라.
우리가 잘 몰라서,
우리 힘만으로는 다 못해서,
그래서,
솔직히 힘들지만.
또한 그래서,
더 행복해지기도 하고,
감사해지기도 하는 그런 시간 말이야.
먼 훗날 언젠가
아빠가 운전석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이 오고,
너희가 직접 그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때가 되면,
오늘 아빠의 이 모습을 떠올려 봐.
그때가 되면,
아빠가 오늘 너희들이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뒷 좌석에서, 아니면 곁을 맴돌면서,
재잘재잘 너희를 위해 응원해줄 테니...
사랑한다, 우리 꼬맹이들.
많이 많이 사랑해.
아빠가 또 편지할게.
너희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고마움을 가득 담아, 그리고...
항상 초보운전이라 미안해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