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동시에 정지했던 미증유의 순간. 서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떨어짐'을 선택해야 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관계, 닿아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무엇이든 그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사라졌을 때에나 분명해지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 시기 소위 '우울증(Corona Blue)'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재미있는 챌린지가 등장했는데, 아이슬란드 산림청이 제안한 '나무 안기(Tree Hug)' 캠페인이 그것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자연과의 닿음으로 그것을 극복해보자는 의미였다. 짐짓 장난스러워 보이는 챌린지였지만, 실제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았고, 그 결과 그 캠페인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주관적인 효과성은 입증된 셈이다.
사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소위 학교 교육에서부터 일반사회, 공동체 삶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통한 교육경험과 기회(Erlebnis)'가 강조된다. 독일어 'Erlebnis'는 '경험, 체험'을 뜻하는 말이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자연 경험, 모험활동'을 지칭하는 말로 빈번하게 쓰인다.
작은 규모의 시(市)를 관할하는 기초단체장들은 시민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자연 공간이나 산책로 마련을 주요 과업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거주하는 도시의 시장만 하더라도 최근 몇 년간 개울과 숲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정비하고, 숲을 통과하는 자전거 길을 새로 만들어 주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NationalparkverwaltungBayerischer Wald (ⓒDaniela Blöchinger)
자연(Nature)을 통한 자신(Nature)의 발견
나 역시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러 가지 중요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위로를 얻었던 기억들이 많다. 사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머릿속을 옥죄는 안개 뭉치 한 점 없는 이가 있을까? 이 날은 나도 그랬다. 이따금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에 못 이겨 정원으로 나왔다가 나무를 심고 있던 이웃 아저씨를 만난 것이었다.
아저씨를 도와 네 그루의 나무를 모두 심었는데, 예쁘기보단 도리어 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원래 있던 곳에서 옮겨와 새로운 토양에 적응하며 당분간 가지가 더 말라지겠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자 안타까운 마음도 일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나무의 겉모습이 아닌, 그 속. 땅 아래를 바라본 것이었다.
겉으로 말라 가는 가지와는 달리 그 밑으로 단단하게 뻗어가는 나무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의 겉은 어쩔 수 없이 말라있을 터이나, 나무는 3년 뒤 맺힐 그 열매를 기대하며 그 왜소함을 묵묵히 기다릴 터이었다.
적이 마음이 놓였다.
아마 그 시간 나는 그 나무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모양이다.
인간의 본성, 성품을 영어로 옮기면 'Nature'이다. '자연'을 뜻하는 영어단어와 꼭 같다.
자연적 본성을 지닌 인간은 자연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이 주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자신을 더 깊이 성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아이들이 부모가 '해석'하고 '결정'해 놓은 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들의 본성(Nature)을 잘 모르니까. 아이들이 자연(Nature) 속에서자신(Nature)을 직접 발견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