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독일의 초등학교 입학식 (Einschulungstag)
벌써부터 소녀 태가 나는 첫째에게
언제 이리도 컸을까?
꼬물꼬물 거리던 우리 아기가.
아직도 흘끗 보면 그때의 그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젠 네 머리가 내 가슴에 닿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구나.
독일 유치원에 가던 첫날,
'말이 안 통해서 어쩌나? 친구들은 잘 사귈까?'
아빠는 사실 이런저런 염려가 많았는데,
용기 있게 다가가고, 여러 활동에 즐거워하던
네 모습을 보며 아빠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단다.
그런 시간도 어떻게, 어떻게 흘러서
유치원도 졸업하고,
이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구나.
네 덕분에 아빠도 진짜 '학부모'가 되었고 말이야.
'부모'란 원래 걱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일까?
아니면 네가 처음으로 '학생'이 되는 것처럼
아빠도 난생처음 '학부모'가 되었기 때문일까?
슬며시 가슴이 '쿵쿵' 요통 치는 것을 숨길 수가 없구나.
지온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용기 있게 나서서
아빠의 떨림을 붙잡아 줄 수 있겠니?
늘 아빠를 '포옥'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마음이 따뜻한 우리 딸.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
정말 정말 축하해.
지온아, 사랑해~
너의 출발을 두 팔 벌려 축복하는 아빠가
입학.
학생이 되는 '첫' 순간.
배움이 시작되는 '첫' 걸음.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시간들은 '배움'의 과정일테지만, '입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야흐로 배움이 시작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가슴이 또 떨려온다.
어른이 이럴진대,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비록 말을 하진 않았지만, 딸아이의 눈에는 약하지만 분명한 긴장의 빛이 서리고 지나갔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독일의 유치원과 학교는 교육적 성격에서 분명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유치원에서는 인지적 학습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놀면 된다.
반면, 초등학교부터(Grundschule)는 '인지 학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드디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배움'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차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바로 '취학준비 검사(Untersuchung zur Einschulung)' 제도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보통 만 6세) 보건청(Gesundheitsamt) 직원들이 찾아와, 아이가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직접 점검한다. 신체, 정서, 사회적 영역은 물론이고 인지능력, 사고 및 판단능력, 언어능력 등도 검사 대상에 포함된다. 교육의 초점이 달라졌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인지적 교육'과 독일의 '인지적 교육'은 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독일에선 '머리'로 이해하고, 암기한, 그러니까 '인식된 지식'만큼이나 타인에게 설명하고, 질문하는 것처럼 외부로 '표현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고, 타인의 의견에 적절한 비판과 동의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강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지필고사에서 100점을 받았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수업 중 발표나 질문 등에는 아무런 참여를 하지 않았다면 실제 그가 받을 수 있는 성적은 지필 점수의 6, 70% 밖에 못된다. 머릿속에 든 지식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목적과 방식이라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이 이런 식의 복잡한 단계를 계속 밟아나가다 보면, 대번에 아이들은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 나는 지금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야.'
앞으로 적어도 12년간은 계속 이어져야 할 <기본, 중등 교육과정>.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간 아이가 미처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학교의 실체(?)'가 파악되고 말 위기에 처했다.
바로 이때, 부모의 적절한 균형 잡기, 전문용어로 '사탕발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치 쓴 약을 먹기 싫어 고개를 돌리는 아이의 눈 앞에 초콜릿을 들이밀어 약 숟갈에 입을 불러들이는 지극한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당연히 그런 식의 '초콜릿'들이 독일에도 있다. 입학 전 준비해야 할 사탕발린 '필수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1. 학교 가방 (Schulranzen)
'학교 가방?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혹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착각이다. 아침이 되면 등산배낭 같은, 거짓말 좀 보태서 거진 자기 몸만큼 큰 배낭을 단단히 울러 매고, 혼자 걸어서 등교하는 저학년 친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매우 독립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나라다, 이 나라가.
초등학교 가방은 그런 의미에서 거의 전문적인, <기능성 제품?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기능성 제품의 큰 특징은 무엇이냐? 값이 (내 기준에선)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이다. 애들 가방인데 거의 3~40만 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그것을 본 아이들은? 아닌 척하지만 당연히 벌써 반쯤 넘어왔다.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가는 중이다.
2. 학교 준비물 (Schulsachen kaufen)
총이 준비되었다면 당연히 총알도 준비해야지! 자, 이제 학교에서 사용할 각종 학용품들도 준비해 보자.
'그냥 부모 마음에, 좀 더 선심 써서, 애들 마음에 드는 것 몇 개 준비하면 되겠지?'
천만의 말씀! 입학식이 있기 전 초등학교에서 부모들(보통 Elternabend 때) 필요한 준비물 리스트를 제공한다.
모든 사항을 문서로 처리하지 않고서는 성에 차지 않는 병적인 정리 습관을 지닌 독일인들의 특성상, 아주 세심한 물품 리스트가 부모 손으로 인도된다. 거기에는 "색연필 24색(굵은 것만, 얇은 것 안됨)", "물감 품질이 좋은 것(예: 브랜드 A, B,...)"처럼 제품명까지 친절하게 명시된 경우가 보통이다.
물론 준비물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비슷하지만, 각 학교의 수업 내용이나 방식에 따라 준비물에도 다소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자녀가 만약 전학을 가게 된다면, 안타깝지만 기존 학교에 쓰던 물건은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 새로이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예를 들면, 전 학교에선 얇은 색연필을 썼는데, 새로운 학교에선 굵은 것만 사용한다던지. 아니면, 전 학교에선 A4 세로 연습장을 썼는데, 새 학교에선 A5 가로 연습장을 쓴다던지 뭐 이런 식이다.
3. 선물 꾸러미 (Schultüte)
사실이지 학교 가방과 준비물 구입하는 것도 하루 아침에 끝나는 일은 아니다. 보통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일이, 직접 보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꽤 긴 시간을 들여 미리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독일 부모는 피곤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질리면 안 된다. 본편은 시작도 안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아무리 좋은 준비물이더라도 준비물은 학교물품일 뿐, 아이들의 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입학 축하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생활 대부분이 '규격화된 나라' 독일답게 <포장재>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입학 선물은 전통적으로 원뿔 모양의 고깔에다 담아준다.
고깔(Schultüte)도 물론 기성품을 살 수 있지만, 웬만하면 또 몇 날 며칠 '주경야작(晝耕夜作)'을 해하며 손수 만들어주시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부모를 위해 심지어는 '수제 고깔 만들기 비법책'도 시중에 판매된다. 우리 부부 역시 이웃집 할머니의 지대한 관심 속에(그 비법책을 사주셨다) 여타 독일 부모들의 기분을 공유할 수 있는 귀한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 그렇다. 독일 부모는 정말 무척 피곤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게 된다면?
이미 게임은 끝났다. 아이들의 입은 귀에 걸렸고, 벌써부터 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모를 조른다. 아이가 얼핏 파악할 뻔했던 학교의 '실체'는 이제 아이의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것이 조금은 특별한 독일 초등학교 입학 준비 과정들이다.
비록 나는 장난스럽게 썼지만, 솔직히 이 과정들이 나쁘지는 않았다. 새로운 발걸음을 떼어야 할 딸아이는 오랜 준비의 시간을 통해 편안해하는 것 같았다. 아마, 부모와 함께 준비물을 챙기며 아이 스스로도 어느 정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모양이었다.
내일을 경험해보지 않은 오늘의 사람들에게 매일 찾아오는 삶 들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고 도전일 터이지만, 특별히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버젓이 붙어있는 초등학교의 시간 속에 딸아이가 행복한 추억들로 꽉꽉 채워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