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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Jan 24. 2021

에세이가 좋다

코로나 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2020년...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시간들을 보냈고 그 시간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언제까지 계속될는지도 아직은 모른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을 뿐...


외부활동이 제한되고 집콕 생활을 하면서 내게 좋았던 점 하나는 이전보다 책 읽을 시간을 많이 가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필요할 때 육아서적을 보는 것 이외에는 따로 책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일 년에 다섯 권 미만의 책을 보는 게 다일 정도.. 그러다 몇 년 전 아이들이 밤 시간에 수영을 배우러 다니면서 나의 책 읽기도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수영강습 시간은 저녁 강습의 맨 마지막 타임이었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내게 시간이 주어진 거다. 사람 없는 조용한  대기실에서 책을 읽는 기분이 꽤 좋았다, 아이들이 수영을 그만둔 이후로는 또 한동안 책을 많이 보지 못하다가 작년... 코로나 19로 다시 나만의 책 읽기가 시작된 거다.


30대 때만 해도 주로 읽거나 선호했던 장르는 소설이었고, 두꺼운 소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소설은 멀리하게 되고 에세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계기로 그렇게 된 건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순간 에세이의 제목들에 끌려 책을 뒤적였고 나와 비슷한 경험들을 풀어놓은 듯한 에세이 속 글들에 공감하게 되었다.


살면서 얽히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 물론 안 좋은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인연들이 많지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겪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생기다 보니 인간관계나 심리를 다루는 에세이들을  즐겨 읽었다. 작가들의 성향도 독자와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내게는 김신회, 김수현, 니나킴 이런 작가들의 글들이 눈에 잘 들어왔고 그들이 그림과 함께 풀어놓는 이야기들에 공감하며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감정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심리상담 선생님 삼아 나와 비슷한 감정들을 찾아다니며 읽다 보니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졌고, 무엇보다 가장 큰 공감은 내 경험과 비슷한 글들을 읽으며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하는 묘한 안도감... 그렇게 에세이는 내게 조용하지만 큰 위로를 주었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라 불편한 나의 감정을 무시한 채 상대에게만 맞춰왔던 나를 바꿔준 것도 에세이였고, 관계 속에서 나를 중심에 두고 나다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도, 그동안 충분히 애쓰며 잘 살아왔다고 도닥여준 것도 에세이였다. 

에세이에 적힌 작가들의 수많은 이야기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고 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때로는 미소 짓고 때로는 눈물을 흘렸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공간에 대한 사유,  여행을 하면서 떠오르는 추억들을 감성 가득 풀어놓은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애정 하는 공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과 철학이 돋보이는 윤광준의 《내가 사랑하는 공간들》과 같은 에세이들을 읽을 때는 나 역시 같이 그 공간을 여행하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당장  몸을 움직일 수 없지만 책 속에 그려진 공간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 속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에세이는 무엇이나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고 형식이 자유로우며 글쓴이의 개성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글이 길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온전한 감정 그리고 그 뒤에 느끼는 조용한 힐링... 이런 기분 때문에 나 스스로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에세이만 찾고 다른 장르에 집중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독서기록장에 책에 대한 느낌을 적어야 하거나, 내가 갈 대학 학과에 맞춰 연계 독서를 해야 할 필요도 없는 나니까 당분간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기분 좋게 보낼 에세이들에 더 심취하련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내가 원해서 읽는 나의 책들... 읽다 보면 처음 골랐을 때의 기대에 못 미치는 책도 있고, 또 어떤 책은 두고두고 남겨두고 싶은 책들도 있지만 살면서 일어나는 너와 나의 이야기들이 가득한 에세이들을 통해 지혜와 현명함도 배운다.


살아가는 건지, 살아지는 건지 때로는 혼동스러울 때도 있지만 지향하는 각자 인생의 목표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하루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에세이의 한 페이지이다. 아직은 미완의 에세이지만 먼 훗날 내 마음에 드는 에세이 한 권을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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