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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Jan 29. 2021

누군가가 나의 애씀을 알아준다는 것

"정말 애쓰셨어요.", "그래, 애썼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언가 이루기 위해 힘쓰다'라는 뜻의 '애쓰다'라는 말...  개인적으로 '수고한다'라는 말보다 내가 더 자주 쓰는 말이다. 나를 위해 또 나를 둘러싼 누군가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애쓰며 사는 우리들... 애쓰고 노력한다고 모든 결과가 다 좋지는 않다는 거... 살아오면서 너무 많이 겪었고 그것 때문에 좌절도 많이 했지만, 앞으로는 괜찮을지, 아니면 얼마나 더 몇 번이나 그래야 할지 알 수 없기도 하다.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가며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때론 지치기도 하고 덧없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 드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엔 아무리 어른이어도 아이처럼 엉엉 울거나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생떼를 부리게도 된다. 난 로봇이 아닌 사람이니까...


누군가가 나의 애씀을 알고 인정해 줬던 기억... 가족을 제외하고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인정을 받았던 기억들 중엔 여고시절 가정 선생님이 계신다. 요즘은 수행 평가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실기 평가라고 불리던 실습 과제들... 가정 과목이다 보니 바느질 평가가 있었는데 그중 고난도인 한복 저고리 만들기가 있었다. 실제 사이즈보다 작은 사이즈로 분홍색 천에 저고리를 만들고 동정을 달아 옷고름으로 이어지는 끝부분을 잘 맞추는 게 포인트였다.

쉬는 시간마다 바느질을 했고 소매까지 어찌어찌 잘했는데 문제는 동정... 흰색의 뻣뻣한 동정을 저고리에 달기 위해 시작 지점을 잘 맞히고 바느질을 시작해도 자꾸 끝에 가면 뭔가가 안 맞는 거였다. 몇 번을 씩씩거리고 안 되는 부분은 선생님께 물어보기도 하고 겨우겨우 예쁘게 잘 완성해 두고 드디어 제출하던 날... 당시 교실에는 개인 사물함들이 있었지만 사이즈가 작아서 많은 책들을 다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랑 친구들은 라면 박스 같은 걸 책상 옆에 두고 필요한 책들을 다 넣어서 꺼내 쓰고는 했다. 점심을 먹고 바로 5교시가 가정 시간... 겨우 잘 마무리한 한복 저고리를 상자 위에 올려 두고 수업 시작 전 양치질을 하러 다녀왔는데 세상에... 그 5분 사이에 내가 애써 만든 저고리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옆자리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교실 주변을 다 살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내 저고리만 안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로 다음 시간에 실기평가를 위해 제출해야 하는데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급한 대로 교무실에 계신 가정 선생님을 찾아갔고 저고리가 없어진 일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그래... 알겠어. 나도 네가 저고리 만드는 걸  지켜봐서 알지. 그런데 그게 왜 없어졌을까?"

"모르겠어요. 분명히 다 완성해서 검사받으려고 책 박스 위에 올려놨었는데 화장실 다녀오니 없어졌어요."

"음... 그러면 네가 만든 저고리... 직접 보면 네 건지 알 수 있겠니?"

"그럼요... 제가 만든 거니 보면 바로 알아요."

"알겠다. 일단 교실에 가고 나중에 선생님이 부르면 다시 교무실로 와."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만든 한복 저고리를 다 걷어가셨고 그날 수업이 다 끝난 뒤에 나를 부르셨다. 그날은 그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가시는 반 전체의 저고리를 한꺼번에 걷는 날이어서 선생님 책상 옆에는 반별로 걷어 놓은 저고리들이 잔뜩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이 중에서 내가 만든 저고리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셨고 결국... 다른 반 저고리 더미에서 내가 만든 저고리를 찾아냈다.


"선생님.. 제 저고리 여기 있어요."

"네 거가 확실한 거지?"

"네. 맞아요... 제가 손에 땀이 나서 저고리 만들다 이 부분에 자국이 좀 났는데 그것도 똑같아요."

"그래. 알았다. 이제 걱정 말고 가 있어. 나머지는 선생님이 알아서 할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저고리를 제출하던 그날 점심시간에, 다른 반 아이가 내 저고리를 가져간 거였다. 내 자리는 교실 뒷문과 가까운 자리였고 정신없는 점심시간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그런 일이 생길 만도 했다. 다행히 날 믿어 주셨던 가정 선생님 덕분에 잃어버렸던 저고리도 찾았고, 실기 평가 점수도 잘 받을 수 있었다. 나의 그 사건을 알고 반 아이들도 같이 분개했다. 뭐 그런 애가 다 있냐고 누군지 아느냐고... 당장 찾아가서 얼굴 좀 보자고.... 나보다 더 화가 나서 같이 분개해 줬던 고마운 친구들...


하지만 그 뒤에 선생님이 다른 반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는 모른다. 나도 그 아이가 누군지 모르고...  그때는 바느질 솜씨도 없는 내가 낑낑거리며 겨우 잘 완성한 저고리가 사라졌다는 그 사실에 정신이 나갔었기에, 선생님이 내 말을 핑계로 듣지 않으시고 믿어 주신 거, 그동안 내가 노력했던 시간들을 알아주신 거, 그리고 억울하지 않게 적절한 액션을 취해주신 것들이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누가 내 저고리를 가져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그 선생님이 나의 애씀을 알아주시지 않았더라면, 그저 실기 평가에 임박해서 제출하지 못한 핑계를 대는 거라고 생각하셨더라면 나는 그 억울함과 분노가 마음에 쌓여 원망이 가득한 시간들을 보냈을 거다. 여고시절 가정 시간만 떠올리면, 아니 가정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그때 그 기억이 떠올라 유쾌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내 마음이 위로받았던 그 순간... 그래서 난 누군가를 믿어주고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애씀을 알아주는 일이 살면서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박광수 글.그림)

아이를 키우면서도 애쓰는 순간은 많다. '어른스러워 어른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처럼 되라고 어른 대접하는 때가 사춘기(서천석,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중에서 )'라고 해서 욱하는 감정을 애써 누르고 좋게 타이르려다가도 내가 날 이기지 못하고 폭발해 버릴 때가 있다. 특히 내가 낳은 내 새끼한테 모진 말을 들었을 때... 아이도 자기감정이 앞서고 엄마라는 존재가 마냥 편하기만 하니 그런 것일 테지만 알면서도 서럽고 속상하다. 어른도 아닌 아이를 상대로 이러는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면 나도 엄마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정말이지 나 없이 어디 맘대로 해봐라 하는 못된 심보가 나온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인 것처럼, 아이들과 투닥거려도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진 않는다.  우리 가족들 최대의 장점이 각자 자기 잘못은 빠르게 인정하는 편... 사과는 쑥스럽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한다. 나나 아이들이나... 아들의 사춘기는 어느 정도 긴 터널에서 끝이 보이는 지점까지 온 듯한데, 이제 딸내미의 사춘기가 본격 궤도에 오른 듯싶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다음날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속상해서 전화 안 하려는 날도 엄마가 전화가 오면 그동안 나와 아이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줄줄줄 말해 버린다.


그러면 엄마는 "아유... 곰돌이 걔는 왜 아직도 그런다니... 걔네들에 비하면 너랑 네 동생은 정말 착했어. 너는 말할 것도 없고 네 동생도 그만하면 말썽 부린 것도 아니었어... 그냥, 편하게 생각해라. 너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곰돌이랑 금쪽이도 엄마가 편하니까 네가 다 받아줄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야. 그래도 우리 곰돌이나 금쪽이도 그만하면 착한 거지. 밖에 나가서 못된 짓 하는 아이들도 많다는데······."라고 하신다.


그러게 말이라며 나도 이런데 정말 말썽 심하게 부리는 엄마들 속은 썩어 문드러지겠다며 한참을 아이들 얘기하다 엄마 얘기도 듣다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엄마가 한 번 더 날 달래며 하신 말씀...  "난 네가 더 걱정이다. 네가 속상하면 나도 속상해······. "  결국, 또 눈물이 왈칵 나와서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엄마는 다 안다. 내 마음이 어떤지... 내가 애쓰는 걸 제일 많이 알아주는 사람... 엄마... 우리 엄마...


나이 50이 다 되어가도 엄마를 붙잡고 이러고 있으니 난 언제 완전한 어른이 되나... 자식은 애물이라더니 내가 딱 그렇다.이렇게 눈물이 많아서야 나중에 나의 딸이 나처럼 힘들어할 시기가 오면 지금 나의 엄마처럼 그렇게 잘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다독여줄 수 있을지... 청소를 하다가도, 밥을 하다가도 엄마와의 통화 끝에 들은 그 말 때문에 자꾸 휴지를 뽑아댄다.


"곰돌이, 금쪽이! 너희들도 애쓰고 있다는 거 엄마가 다 알아. 엄마도 노력하고 있으니 우리 서로 조금만 더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 주자. 서로 애쓰고 있는 그 마음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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