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둘 다 동시 등교를 했던 이번 주... 온라인 오프라인 등교를 반복하다 보니 동시 등교하는 일이 쉽지 않아 나로서는 일이 없는 이틀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혼자만의 시간인지... 그 첫 날인 지난 수요일에 내가 간 곳은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제물포 구락부와 그곳에서 전시 중인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ieth)의 올드 코리아! 12월부터 시작했던 전시가 4월 4일까지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전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아이들 둘을 다 학교로 보낸 그 첫날에 과감히 혼자 제물포 구락부로 향했다.
젊었을 땐 혼자 다니는 게 영 어색하더니 이젠 가끔씩 혼자 다니는 게 편해졌다. 그날 나의 계획은 제물포구락부를 둘러보고, 올드 코리아 전을 관람한 후에 근처 인천 아트 플랫폼의 H동에 있는 서점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이었다. 11시 방문예약을 하고 찾아간 제물포 구락부! 1901년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을 위해지었던 공간이다. 들어서자마자 공간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에 빨려 들 듯 개항기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1919년 언니를 따라 한국에 온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올드 코리아는 그녀의 그림과 언니인 엘스펫 키스의 글로 20세기 초반 한국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책인데, 엘리자베스 키스를 연구하고 그녀의 작품을 수집한 재미 학자 송영달 교수가 직접 번역했고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도 디지털화해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림을 통해서 한국인의 의상, 집의 모양, 풍습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반적인 한국 고유의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애썼다.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한국의 문화는 존경하고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엘리자베스 키스"
조용한 시간에 제물포 구락부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한국을 사랑한,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20세기 초 한국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간이 이렇게 힐링이 될 줄이야...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와도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글이 담긴 '올드 코리아'를 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다시 2층으로 올라오니 커피로 읽는 인물의 모습과 스페셜 블렌딩 된 커피가 담긴 패키지가 전시된 공간, 그리고제물포 구락부 2층 중앙에 자리한 바 테이블 '김란사 바'가 더 자세히 보인다. 김란사 바는 커피 인문학과 핸드드립 실습을 병행하는 일일 스폿 프로그램, '제물포 구락부 인문학 아카데미-읽는 커피'를 진행하는 장소...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런 소규모의 강의도 듣고 싶은데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나의 시간이다.
제물포 구락부의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읽는 커피의 주인공들이 그려진 커피 백과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이 그려진 엽서들 중 한 장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커피백... 아마 뜯지 못하고 계속 남겨두게 되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키스의 모습이 그려진 엽서도 갖고 싶었지만 커피백에 그녀의 얼굴이 있으니 '두 한국 아이'라는 작품으로 만든 엽서를 골랐다.
쫓기지 않고 천천히 들러볼 수 있어서 좋았던 전시... 이번 전시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영국의 화가... 그녀를 연구한 학자 송영길 교수도,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제물포 구락부도 다 내게 너무 감사한 존재가 되었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복잡한 마음에 생각도 뒤죽박죽이라 사실 브런치라는 공간에 뭔가 글을 쓴다는 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갑작스레 마음먹고 다녀온 제물포 구락부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전을 보고 나서 말랑해진 마음으로 이렇게나마 감상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찾지 않으면 없었을 반나절의 소확행!! 기뻤다 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