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요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정해진 루틴을 따르다 보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면서도 한번 지난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순간 무섭기도 하지만 내가 잡을 수 없는 시간이니 주어진대로 최선을 다할 방법밖에...
일을 하는 시간이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든 하루의 끝에 다다르면 그래도 뭔가 정리가 되어 있어 좋다.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 그 시간쯤 되면 오늘 하루도 별탈없이 마무리 되는구나하는 마음에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정말 개운하게 샤워하고 폭신한 침대로 들어가는 그 순간이 하루 중 내 감각이 가장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침대 시트의 부드러운 감촉, 적당한 이불의 두께, 불 꺼진 방의 분위기... 숙면을 위한 최고의 조건이다. 냉장고 이불이라 불리는 인견이 아무리 시원해도 몸에 닿는 부드럽고 따뜻한 면의 감촉을 좋아해서 더운 여름에도 난 면 이불만 덮는다. 엄마 아빠와 같은 방에서 자던 어린 시절... 엄마는 여름이면 바닥에 까는 요에 삼베 같은 까슬까슬한 천을 덮고 이불도 홑이불 같은 얇은 이불을 준비하셨다. 두 분 다 더위를 잘 타셔서 우리 집 여름 요는 늘 누런 베 커버가 덮였었는데 어찌나 그 느낌이 싫던지... 나만 고집스럽게 면 이불을 덮고 잤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이니 땀으로 요가 젖어도 까슬까슬한 이불보단 축축한 면이불이 난 더 좋았다.
그렇게 내 몸에 착 감기는 면이불을 덮고 눕는 그 순간... 허리가 쫙 펴지는 그 느낌, 이제 잠들 때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자면 되니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고등학교 시절 늦게까지 공부하면서도 이것만 끝내고 곧 푹신한 이불로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힘든 시간들을 버텼다. 늘 긴장 속에 살았던 시간이었지만 내 침대 내 이불속으로 들어가며 느꼈던 그 편안한 느낌과 그 시절 내방의 분위기... 그 모든 게 아직도 생생하다.
이불속은 사람의 품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누구에게라도 편한 그 느낌에 대해 내가 마치 나만의 느낌인양 너무 유난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게 무장해제되는 그 기분이 참 좋다. 누워서 바로 잠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잠자기 전 잠시 책을 보거나 신랑과 유튜브를 같이 보기도 하고 아님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기도 한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쉽게 잠이 안 와 뒤척이느라 잠을 설치는 날도 물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내 몸을 포근한 침대에 뉘이는 그 순간은 하루 일과를 무사히 다 마치고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이니, 아마 그런 심적 안정감이 내 몸의 감각까지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간은... 내가 하루 중 나의 감각이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이라 생각하며 푹신한 침대에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눕는 그 순간에도 내 몸의 감각과 정신은 예전처럼 무장해제되지 못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 느낌인 데다 베갯잇에 닿는 얼굴 피부까지 쓰려왔다.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지면 오른쪽 얼굴 피부가 스치기만 해도 쓰린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느낌... 머리는 온갖 고민들로 가득하고 시간이 갈수록 정리가 되기는커녕 가슴속에 돌덩이 하나 얹어 놓은 그런 느낌이었다.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세상 부드러운 그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으니 편히 잠들 수도 없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옛말... 자식이 많으면 그만큼 걱정 근심이 많다는 그 말... 난 기껏해야 둘인데도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또 한 가지 일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려고 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마음이 쉴 새가 없다. 내 머릿속이, 내 마음속이 고민 명당자리라도 되나... 물론 자식들을 키우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고민하고 크게든 작게든 속 썩는 건 당연하다. 그 속 썩는 일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딱 일주일 전 지난 2월 말... 한 달간 쉼의 시간을 가지던 딸도 편안해지고 날씨도 봄이 온 듯 따뜻하더니만 지나치게 평온하다 싶은 그때를 조심했었어야 했나 보다.
3월의 첫 날 전해진 아들의 결심...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올해 고2라 이제 방황을 끝내고 열심히 하겠다는 얘기를 해주려나 싶었는데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것과 전혀 다른 길로 진로를 정하겠다니... 앞길이 막막했다. 더군다나 아들이 하고 싶다는 그 일은 정말이지 전혀 예상도 못했고 심지어 그동안 관심조차 없는 듯 보였어서 내가 느낀 충격은 더 컸다. 이제 시작해서 언제 하나, 한다고 한들 결과가 제대로 나오기는 할까... 나로서는 말리고 싶은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래 ...해보기 전까진 모르니 우선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다 치더라도, 해 보다가 다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이키기엔 우리나라 고2의 시간은 너무 짧다. 차라리 좀 더 일찍 결심했으면 긴긴 겨울 방학 동안을 시행착오의 기간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개학 앞두고 이게 무슨 난리인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생각해 찾은 것은 다행이나 두 팔 벌려 응원해주기엔 많이 불안하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그렇게 말을 한 이상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아들의 그 고집... 아무도 못 꺾는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려도, 그 길은 진흙탕이니 가지 말라고 수없이 말해도 꼭 자기 스스로 해 봐야 깨닫는 그런 녀석이란 걸...
이제 내가 할 일은 정말이지 지켜보는 것뿐이라는 거... 그 조마조마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불안해도 참고 어쩌면 나보다 더 불안할 그 녀석을 살피며 다독거려 줄 일뿐이라는 거... 그 사실만이 남았 다. 네가 결정했으니 스스로 책임지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 자식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며 아이가 힘들 때 내 속을 더 시커멓게 태우는 그냥 그런 엄마인 거다. 며칠간의 고민 후, 아이가 하고 싶다는 그 일을 위한 치다꺼리를 다 끝냈던 날 밤... 마음을 터 놓는 친구들 둘과 묶인 카톡방에 한마디 썼다. "결정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면 마음이 후련해야 하는데 나... 너무 마음이 불편해."
동갑인 친구 H, 그리고 우리보다 한 살 어린 K, 그리고 나... H와 K의 아이는 고3, 그리고 우리 아들은 고2라 우리 셋의 걱정과 고민은 너나 할 거 없이 같다. 내 문자를 보고 바로 전화를 한 K의 첫마디는 "언니, 괜찮아?"였다. K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터지는 눈물... 아들을 키우고 있는 K 역시 말 안 해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이어서 K가 말했다. "언니, 나도 **이 때문에 속상해서 신랑한테 얘기했더니 우리 신랑 뭐래는 줄 알아? 남자 애들은 한참 걸려서 지들이 스스로 느껴야 그제야 움직일 거래. 자긴 **이 좋은 대학 안 가도 상관없으니 나더러 애한테 신경 끄고 그냥 내 인생 살래. 지금 영어 문제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남자 애들은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아마 제대로 사람처럼 뭔가 하려면 지금부터 10년은 더 기다려야 된다고 그냥 알아서 하게 두래."라고...
신경 끄고 내 인생 살기... 그래 어쩌면 그게 현명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 각자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 스스로 길을 찾고 만들어 가는 것도 결국 자기 몫이니까... 한참을 더 전화를 하다가 끊고 다시 생각했다. 결국은 내 욕심에 내가 괴로운 거 아닐까 하고... 아들이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해보고 싶다고, 지금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다고 확실하게 얘기한 그 길에 결과를 알 수도 없으면서 미리부터 불안함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건 나라고... 아이보다 몇십 년 더 산 어른이라는 이유로 지레짐작하고 부정적인 시선부터 내놓은 나였다. 본인도 자신 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속으로 더 힘들고 제일 불안한 사람은 아들일 수도 있는데 그런 아들에게 내 불안을 먼저 보였으니 그런 엄마를 보는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중, 장석주 <대추 한 알>
그래...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는데, 모든 순간이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라는데...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가 할 일은 정말이지 없다. 아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그것 뿐! 그 과정에서 조급해지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바보 같은 순간들도 여러 번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 마음을 숨길 수 있도록 잘 연습해야겠지...
아직도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이 예전처럼 편하지 않다. 다시 예전처럼 잠들기 전 편안함을 느낄 날이 언제쯤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이 상황에 적응이 되고 무뎌지면 좀 나아지려나? 끝나지 않을 고민을 침대 속으로까지 갖고 들어가는 순간이 아닌, 정말 본능적으로, 하루 중 내 감각이 가장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꼭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