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리아 Mulia Aug 06. 2021

진정한 어른,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

책. 어른의 무게 - 장한이

몇 살부터가 어른일까? 성인식을 끝낸 스무 살 이후부터? 아니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다음부터? 생각해보면 기준이 참 애매한 어른이라는 단어...


어른 :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놓은 위 사람. 결혼을 한 사람.(네이버 국어사전)


사전적 의미의 어른의 정의다. 다 자란 사람은 신체적인 의미를 말할 테고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직장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상황을 말할 테고...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고 결혼을 한 사람의 기준에도 어느 정도는 맞으니 그럼 나도 어른이 맞긴 하겠다. 그런데 정말 어른이란 게 그렇게 딱딱 몇 가지 조건만 끼워 맞춘다고 어른인 걸까?  사십 대 후반으로 가고 있는 나 조차도 내가 정말 어른인지 모호할 때가 많고 또 어떤 날은 겉모습만 어른이지 속은 아직도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유치원생인 것도 같은데, 남이 보는 나는 이미 겉보기 등급으로도 완벽한 어른일 테니 참 할 말이 없어진다.

《어른의 무게》는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모두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실감하며 살아가는 장한이 작가,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시는 이드 id님의 에세이이다.

4장으로 이루어진 에피소드들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평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읽기에 부담도 없고, 정글 같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인간관계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내가 사십 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른으로서 가장 애매한 나이인 것 같은 사십 대에 맞는 이야기들이 많아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쉬울 줄 알았다. 어른이 되자 나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어른이라는 무게가 점점 더 버겁다. 욱하는 남편, 어머니에게 화내던 아들, 할머니한테 못되게 굴던 손자. 누나와 친구에게 욕하고 독설을 퍼봈던 나. 모두 나였다. 직장에서 착한 척하는 나도, 상대방의 헛소리에 넋이 나가는 나도 나다. 고상한 척 글을 쓰면서 동료를 맹렬하게 헐뜯는 사람 역시 나다.(P35)


입시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 대학에만 가면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내 모습은 이게 아닌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싫어도 좋은 척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너무 많은 나를 내 안에 품고 다니느라 버겁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작가의 말처럼 모두 다 내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내 모습... 작가는 진정한 나다움은 없는 거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그저 세상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가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껏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버틸 수 있던 건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나의 모습들 때문이라는 그 말에 묘하게 공감이 되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소멸한다. 직장인이 되면 다시 한번 강렬한 소멸을 맛본다.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의 길지 않은 시간을, 망각이라는 수단으로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내 삶도 직장이라는 굴레에 갇혔다. 천직이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일이 싫고 일상이 괴로우면서도 이별하지 못한다. 궤도 밖의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직장이라는 행성 주변만 맴돌고 있다. 삽시간에 소멸로 접어든 직장인의 삶을 마주하면서 깨달았다. 누구나 소멸 이후의 삶을 떠올려야 한다고. 직장인 밖에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소멸 후의 나를 창조하고 가꿔야 한다. 소멸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설렘이다.(P78-79)


탄생이라는 고귀한 순간에 어느 누군가는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라고... 늘 죽음을, 소멸을 생각하고 살진 않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보내버리는 시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무서움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주어진 일을 하느라 지치고 바빠서 궤도 밖의 삶을 생각할 겨를도 용기도 없다는 변명이 구차해질 때도 많다. 삼십 대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느라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드는 사십 대에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다음은 뭘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그 이후 우리 부부의 삶은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등등... 아직은 신랑이나 나나 각자 속한 궤도에서 이탈할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보는 미래의 모습... 직장에서의 소멸이라는 말이 참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 소멸의 순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겠다는 깨달음을, 이미 알고 있는 그 깨달음을 쌓는다.


남자들은 인간관계가 좀 쉬울 것 같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그냥 그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아닌 사람 나름이라는 것, 남자들이 맞닥뜨리는 인간관계 역시 너무 복잡하고 치사하며 씁쓸하기도 하다는 것... 라떼는 말이야를 남발하는 직장 상사들, 호의를 권리로 아는 주변 친구들, 직급에 따라 관계마저 달라지는 직장 동료들...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만 선을 넘는 사람들을 보며 작가는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열심히 '감정'통을 버리고 채운다.


꽉 찬 쓰레기통에는 아무것도 넣을 수 없다. 툭 던지면 굴러 떨어진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케케묵은 감정이 밑바닥부터 가득 차 더는 담지 못할 때 넘친다. 오랫동안 자리한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수시로 비워야 쓰레기통은 제 임무를 수행한다. 사람의 '감정'통도 마찬가지다. 제때 비워야 타인을 좀 더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마음, 진심, 배려를 왜곡 없이 받아들이고, 불편한 감정도 희석해 품으려면 여유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어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버리고 채우는 중이다.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감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P161)


살다 보면, 또 누군가와 오래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로 오해가 쌓여 벌어진 틈을 점점 더 벌려 놓는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둘 중 한 사람의 문제일 수도, 아님 둘 다 변해서 그럴 수도, 예전처럼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다 받아내고 넘길 여유가 내 마음에 없어져서 일 수도 있다. 변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사이는 멀어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연은 끊어진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처럼, 상대를 생각한 배려가 되려 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마다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가까운 관계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씁쓸해지고 허무해지는 마음은 상당히 꽤 오래간다.


나야 늘 관계에서 좀 휘둘리는 편이라 그러려니 하고 이젠 어느 정도 좀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늘 나의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신랑은 관계에 있어 꽤 담담한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에 신랑이 고등 절친 동창 때문에 마음이 상했던 일을 전해 듣고  '그 친구 갱년기냐, 남자가 무슨 속이 그렇게 좁냐'라는 말로 신랑을 달랬던 적이 있다. 그때 신랑이 했던 말... "예전 같으면 이유를 모르니 답답한 마음에 왜 그러느냐고 계속 전화해서 말했을 텐데 이젠 그럴 여유도 없어. 조만간 고향 내려가서 한 번 연락해 보고 그때도 반응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지. 아무 때나 연락해도 부담 없고 맘 편한 게 진짜 친구 아닌가? 처음엔 좀 힘들더라고..."


30년 지기 친구에게 느낀 알 수 없는 불편함,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 싫으면 말고라는 체념의 감정 등이 신랑에게도 있었다. 감정을 채우고 버리는 일... 좋은 감정만 우리 가슴과 머릿속에 넣어 놓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체념하듯 마음을 새로고침 하고 브레인 리셋을 해야 하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안타깝다.


시간에 맡기면 그만이다.
애쓰지 않아도 남을 사람은 남을 테니까.


장한이 작가의《어른의 무게》에는 직장생활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다. 직장에 다닐 날보다 다닌 날이 더 많아졌다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멋모르고 입사해서 우여곡절 다 겪다 보니 어느새 위에서 누르고 아래서 치받히는 끼인 세대가 되었다. 참 여러모로 짠한 사십 대... 단순히 직장에서의 삶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돌봐야 할 부모세대와 자식들 사이에서 늘 전전긍긍 고군분투하며 사는 나이 때인 것 같다.


신랑에게도 가끔 전해 듣는 요즘 세대의 당돌함... 처음엔 어이없다가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른 그냥 신인류... 오죽하면 책 잘 안 읽는 신랑이 한때 젊은 그들을 이해하고자《90년생이 온다》를 손수 사서 읽었을까... 한때 신랑도 옳지 않은 일을 보면 나서서 말하고, 팀원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부당한 상사의 처사에 대들고, 황당한 태도를 보이는 후배에게 쓴소리도 해 봤지만 중간관리자가 된 지금... 그는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보인다. 집에 와서 내게 참았던 말들,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쏟아부을지언정...  


사회생활은 전쟁이고, 실전이고, 모방이고, 답습이다. 가랑비에 젖듯 나도 모르게 현실에 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이가 어리다고 新 직장인이 古 직장인과 전혀 다르게 살지 않는다. 반대도 그렇다. 애초에 직장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며, 경험을 통해 다시 태어날 뿐이다. 하지만 누구도 형벌을 피할 수는 없다. 변하기 싫지만, 일하기 싫지만, 출근하기 싫지만, 웃기 싫지만, 그만두고 싶지만, 화내고 싶지만, 두들겨 패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충성하기 싫지만 충성하는 척하는 형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잔혹한 형벌은 건강해지고 싶지만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P227-228)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와 함께 일하던 팀장님 이야기가 있었다. 늘 회사를 걱정하고, 가정보다 부모보다 회사를 더 우선시했던 분... 헌신하며 충성했던 그분은 건강을 잃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회사에 애사심을 갖고 윗분들에게 충성하는 일... 필요하지만 내 개인의 삶이 망가지도록, 회사를 위해 남은 가족들이 희생할 정도의 헌신은 과한 게 아닐까. 떠난 사람은 안타깝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줄고 점점 잊히는 일만이 남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해도 되는지 읽으면서도 남겨진 가족들 생각에 좀 안타까웠다. 요즘 세대의 당돌함과 다름을 말하기 위해 《90년생이 온다》를 위에서 잠깐 예로 들었지만 회사 생활에서도 '자기 자신과 자기 미래'를 우선시하는 90년대 생들의 영특함을 배울 필요도 있겠다 싶다. 물론 언제나 극과 극은 늘 안 좋으니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필요하겠지만...


돌이켜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충분하게 단단해지는 과정이 아니었다. 한결같은 자신을 품고 살면서 나약한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무게를 견디는 과정이었다. 어른이 된다고 본성이, 인생이, 성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멘털이 단단해지고 낯이 두꺼워지지도 않는다.(에필로그 중에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에필로그 속 작가의 말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까? 나 역시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이 아닌, 그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주 인상 깊게 봤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도 많이 생각했다 어른의 의미에 대해... 지안에게 완벽한 어른이었던 동훈, 하지만 내가 본 동훈 역시 흔들리는 어른이다. 나약하고, 때론 억울하고, 삶이 그다지 재밌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그만의 길에 서 있는 수많은 우리들 중 한 명인 어른...


작가는 말한다. 저마다 견뎌내야 하는 무게가 주어진다고, 그 무게를 덤덤하게 견뎌내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라고... 누구나 처음 어른이 되기에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런 결핍 속에서 어른의 무게를 견디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전한 어른도 없다고 말이다. 작가의 그 말이 어른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자주 느끼는 나에게도 묘한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가 정상이구나 라는 일종의 안도감도 느끼며...

7월의 어느 주말... 당일로 피크닉 삼아 다녀온 중미산 휴양림에서 읽었던 장한이 작가의 에세이 《어른의 무게》... 제목은 다소 무거운 듯 느껴졌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토닥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숲이 주는 편안함, 조용하게 혼자 보낸 시간이 주었던 고요함이 더해진 토닥임... 참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딸과 함께 낮잠 자던 신랑이 텐트에서 나온다. 그에게 건넨 말... "자기야, 다음에 캠핑 갈 때 자기도 이 책 읽어 보면 좋겠어."

저마다 견뎌내야 하는 무게가 주어진다. 
이 무게를 덤덤하게 이겨내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 아닐까. 
어른의 무게는 결국 마음의 무게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견뎌내는 중이다.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놓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헤매는 우리 마음을 잡아줄지 모를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