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른의 무게 - 장한이
어른 :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놓은 위 사람. 결혼을 한 사람.(네이버 국어사전)
어른이 되면 쉬울 줄 알았다. 어른이 되자 나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어른이라는 무게가 점점 더 버겁다. 욱하는 남편, 어머니에게 화내던 아들, 할머니한테 못되게 굴던 손자. 누나와 친구에게 욕하고 독설을 퍼봈던 나. 모두 나였다. 직장에서 착한 척하는 나도, 상대방의 헛소리에 넋이 나가는 나도 나다. 고상한 척 글을 쓰면서 동료를 맹렬하게 헐뜯는 사람 역시 나다.(P35)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소멸한다. 직장인이 되면 다시 한번 강렬한 소멸을 맛본다.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의 길지 않은 시간을, 망각이라는 수단으로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내 삶도 직장이라는 굴레에 갇혔다. 천직이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일이 싫고 일상이 괴로우면서도 이별하지 못한다. 궤도 밖의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직장이라는 행성 주변만 맴돌고 있다. 삽시간에 소멸로 접어든 직장인의 삶을 마주하면서 깨달았다. 누구나 소멸 이후의 삶을 떠올려야 한다고. 직장인 밖에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소멸 후의 나를 창조하고 가꿔야 한다. 소멸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설렘이다.(P78-79)
꽉 찬 쓰레기통에는 아무것도 넣을 수 없다. 툭 던지면 굴러 떨어진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케케묵은 감정이 밑바닥부터 가득 차 더는 담지 못할 때 넘친다. 오랫동안 자리한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수시로 비워야 쓰레기통은 제 임무를 수행한다. 사람의 '감정'통도 마찬가지다. 제때 비워야 타인을 좀 더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마음, 진심, 배려를 왜곡 없이 받아들이고, 불편한 감정도 희석해 품으려면 여유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어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버리고 채우는 중이다.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감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P161)
시간에 맡기면 그만이다.
애쓰지 않아도 남을 사람은 남을 테니까.
사회생활은 전쟁이고, 실전이고, 모방이고, 답습이다. 가랑비에 젖듯 나도 모르게 현실에 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이가 어리다고 新 직장인이 古 직장인과 전혀 다르게 살지 않는다. 반대도 그렇다. 애초에 직장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며, 경험을 통해 다시 태어날 뿐이다. 하지만 누구도 형벌을 피할 수는 없다. 변하기 싫지만, 일하기 싫지만, 출근하기 싫지만, 웃기 싫지만, 그만두고 싶지만, 화내고 싶지만, 두들겨 패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충성하기 싫지만 충성하는 척하는 형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잔혹한 형벌은 건강해지고 싶지만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P227-228)
돌이켜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충분하게 단단해지는 과정이 아니었다. 한결같은 자신을 품고 살면서 나약한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무게를 견디는 과정이었다. 어른이 된다고 본성이, 인생이, 성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멘털이 단단해지고 낯이 두꺼워지지도 않는다.(에필로그 중에서)
저마다 견뎌내야 하는 무게가 주어진다.
이 무게를 덤덤하게 이겨내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 아닐까.
어른의 무게는 결국 마음의 무게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견뎌내는 중이다.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