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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얼굴 반쪽

-2학기 원격수업을 하며

by 까미노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위해 줌에 수업(회의)을 개설한다. 복사한 주소를 각 반에 안내하고 학생들이 시간에 맞춰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앞 시간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들여보내 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부터 수업 시작 후 15분이 지나서도 안 들어와 담임교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학생까지 수업 끝나는 시간은 같은 데 들어오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모두 들어온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디오를 켜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학생, 본인인지 확인할 수 있게 비디오를 켜라고 여러 차례 부탁(?)해야만 못 이기는 척 따르는 학생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비디오를 켜도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학생을 찾기 어렵다. 여러 번 요청해야 겨우 화면 귀퉁이에 자신의 머리카락 일부를 살짝 비추는 것으로 수업 참여 인증을 대신하는 학생이 상당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2학기가 시작되며 교육부는 “조회, 종례는 실시간으로, 주 1회 이상 쌍방향 수업을 시행하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1학기부터 전면적으로 줌 등을 통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해온 몇 안 되는 학교를 제외하고는, 학교 대부분이 갑작스럽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게 됐다. 수업과 관련한 세부사항에 대해 학생, 교사, 학부모가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건너뛰고, 지침에 맞춰 2학기 교육과정이 진행되게 됐다. 그렇다 보니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또 발생하고 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통해 학습격차를 해소하는 것보다, 학생 얼굴의 어느 부분까지 보여야만 출석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긴급 논의하는 웃지 못할 일이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교육과정과 관련한 지침은 교육부나 교육청이 제시한다. 하지만 출결 처리 기준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결정한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 시작 5분 이내에 접속하지 않는 경우, 비디오를 켜서 얼굴 확인이 안 되는 경우, 수업 중간마다 내용을 제대로 듣는지 확인하는 문제나 질문에 대답이 곧바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등 다양한 기준을 정하고 결과로 처리를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중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형태의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받더라도 학교의 기준에 따라 누구는 출석으로, 누구는 결과로 처리될 수 있는 환경이다.



민낯이 무서운(?) 학생들

특히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자신의 민낯을 화면에 내보이는 것에 대해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감이 심하다. 등교 수업 때엔 아침을 굶는 한이 있어도 화장은 하고 등교를 할 정도다. 이런 아이들에게 민낯, 그것도 온라인 공간에서 누군가를 상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지금, 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이전처럼 화장하긴 어렵다. 그렇다 보니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곤욕인 학생들이 생겨났다. 때론 마스크를 쓰고 수업에 참여하기도 하나, 집에서까지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답답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실시간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머리카락 일부를 살짝 비추는 것으로 대신한다. 교실이 아니라 오롯이 수업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불편한 마음과 태도로 참여하니 수업 내용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대개 여학생들의 화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제 화장은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의 굳건한 또래 문화가 되어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마냥 ‘화장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제들도 학생들과 앞서 논의해 해법을 모색해보는 과정을 거쳤으면 어떨까?


코로나19가 학교, 수업을 많이 바꿔놓았고, 사람들의 삶이나 마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위권이 사라지는’ 학력 격차 문제, 학교라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과 같은 ‘큰’ 이슈들이 매일매일 뉴스에 등장한다. 이는 돌고 돌아 교육 당국의 정책이나 지침에 반영이 된다. 학력 격차와 생활 습관이 문제가 되니 출결 기준을 더 빡빡하게 조정하고, 조종례의 실시간 점검이 반영된 가이드라인, 실시간 쌍방향 수업의 확대와 그를 위한 환경 구축 지원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인터넷 환경이나 학생 통제(?) 방법에 집중되면서 실제 학교 현장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학생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의 심리적 요소는 ‘덜 시급한’ 문제로 뒤로 밀려나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2학기 개학을 하고 3주 만에 우리 반 학생들이 등교했다. 그동안 온라인 실시간 수업에서 만났을 때의 침울하고 딱딱한 모습은 간데없다. 코로나19 이전에 만났던 여느 중학생들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 가득한 웃음과 쉴 새 없이 발동하는 장난기로 인해 금세 교실에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실시간 수업에서 이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가려진 반쪽의 얼굴을 하며 어두침침한 세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어느 방역전문가가 방송에서 “이런 상황이 최소 3년은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등교해서건 화면에서건 코로나19가 앗아간 우리 아이들의 나머지 반쪽의 얼굴을 빨리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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