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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해서

by 까미노

한문 수업시간에 ‘一石二鳥’ 성어를 가르치게 되어 자전거 출퇴근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작년 갑작스러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15년 넘게 출근 전 아침 운동으로 해오던 배드민턴을 못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선택한 운동이 자전거 출퇴근이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다 보니 아침 교통지옥을 경험하지 않게 되는 것을 비롯해 교통비가 절감되고 더 크게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매연을 배출하지 않으니 ‘일석이조’의 충분한 예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로 출근을 하면서 생긴 애로사항이 근무복장이다. 아침 방역 활동을 위해 학생들을 맞이하러 나갈 때 신을 신발이 마땅치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신은 신발을 신고 있기에 복장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복장에 맞는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타기에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그냥저냥 무시하며 지냈는데 보는 사람들(교직원과 학생들)도 생각해야겠기에 학교에서만 신을 저렴한 로퍼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입한 사이트에 비번이 생각이 안 나서 SNS 로그인(카카오톡)을 했더니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DAUM(다음)의 메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10년 넘게 네이버를 주된 메일 주소로 쓰다 보니 최근에 온 거는 반갑지 않은 스팸메일 몇 개가 전부였다. 그것을 지우자 다음 페이지에 있었던 예전 메일이 툭 튀어 올라왔다.


그렇게 발견한 반가운 이름들과 그 사람들이 보내온 애틋한 사연들. 이렇게 10여 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더욱 반갑고 그립다. 그중 고3 담임할 때 (지금은 30대 중반이니 아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아이처럼 기억되는) 우리 반 아이가 보낸 메일을 보다가 문득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번호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바빠서 못 받는 것인지 끝내 그 아이의 목소리는 다시 듣지 못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 분의 메일이 그 아래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2004년 12월 15일에 수신된 메일이다.

‘아침에 전화드렸던 ◎◎프로덕션의 송**입니다. 저희 ◎◎프로덕션은 교육방송국의 중, 고등학교 교과 프로그램을 외주 제작하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당시 나는 고3 담임 3년 차로 인문계 진로진학 팀장을 맡아 한창 바쁠 때였다. 메일에 적혀 있는 것처럼 처음에 전화가 왔을 때는 EBS로 속여 말하며 교재나 물건을 팔려는 곳은 아닐까 의심이 들어 일단 거부반응부터 보였다. 그런데 좀 더 얘기를 나누니 사기 치는 곳은 아니었으나 대학입시의 아주 중요한 시점에 그곳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서 거절하며 통화를 마쳤다.


그러자 전화에서 못했던 내용까지 구구절절 적어서 다시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요지는 ‘EBS 중학교 한문 강의’가 새로 만들어지는데 자신의 프로덕션과 함께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제안이었고, 중학교에서 1년 반의 짧은 근무경력만 있던 내게 적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안에 감사하지만 사양하겠다는 답메일을 정중하게 적어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지난번 연락을 한 팀장이 아니라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저희가 선생님 말씀 듣고 다른 분을 섭외해 보려고 계속 찾았으나 선생님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일단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어 파일럿 프로그램 10분짜리를 찍게 되었고, 다행히 EBS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채택해줘 그때부터 2년 동안 ’EBS중학교 2학년 한문’ 수업을 찍었다.

매달 들어오는 적지 않은 출연료로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게 되었고 생계에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구성ㆍ원고ㆍ촬영까지 전 과정에 쏟는 에너지와 스트레스도 여간 만만치 않았다. 간혹 방송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급하게 재녹화하는 때도 있었고, 방송 후에 올라오는 시청자 게시판의 소감에 늘 촉각이 곤두서곤 했다. 이것이 주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급격하게 탈모가 진행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탈모약을 매일 먹고 있다.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어제 종방을 한 드라마 ‘시지프스’는 찾아서 봤다. 만약 내게도 그런 기회(능력)가 주어져 17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프로덕션의 제안을 수용하게 될까? 50여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선택의 순간은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았을 것이다.

언뜻 떠올려지는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이런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 내 선택은 옳았던가?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가족을 포함해 주변의 사람들까지 피해를 준 것은 아닐까?

‘하늘이 내게 준 명을 알게 된다’라는 지천명의 나이에 곧 접어들면서 앞으로도 종종 만나게 될 ‘선택’의 순간에 ‘나는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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