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십여 년을 꾹 참고 기다린 저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곁을 쉽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그렇게 큰 아픔을 겪었지만 절대로 저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기다려 작년 가을에 다시 그녀에게 제 마음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녀는 쉽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작년보다는 좀 더 단단해진 제 자신이기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들 눈에는 집착처럼 보일지라도 끈질기게 그녀에게 매달렸습니다.
누군가 ‘저렇게 구차하게 하면서까지 왜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만큼 그녀를 향해 제 모든 마음을 쏟아부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래야만 될 거 같았습니다. 재작년 실패의 원인은 온 마음을 다하지 않고 너무 쉽게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자만했기 때문이라 판단했거든요.
작년 12월 29일, 그녀는 조건부로 살짝 제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네가 2월 초까지 하는 거 보고 그때 결정할게”
재작년에 비하면 그 조건부 허락마저도 제게는 감지덕지한 일이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끝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긴 한 달여를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녀가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니까 안심하고 있어.”
“이번에도 쉽지 않을 거 같으니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 게 어때?”
40년이 넘는 삶 동안 이렇게 힘든 겨울을 보낸 적이 있을까 돌아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제게는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말한 2월이 왔습니다. 노심초사 기다린 시간만큼 정말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제 마음을 받아주실 건가요?”
“좋아요. 우리 1년만 만나 봐요.”
정말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은 딱 이랬습니다.
‘이것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구나!’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만남.
얼마 전에 100일이 지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떨어질 레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늘 꿈같은 시간의 나날들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는데 100일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그런 날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그녀는 제게 천천히,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저를 들여다볼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녀가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사랑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제가 갑자기 찾아온 그녀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너무나 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고민을 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저와 같은 처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힘들어하며 고민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민을 나누고자 만났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 23일~24, 이틀 동안 머리 터지게 고민한 끝에 찾은 원인은 결국 ‘나’였습니다.
그녀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아왔던 틀 속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틀 밖으로 나와야 했는데 여전히 그 틀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고집스럽게 손에 쥐고 놓아주지 않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려고 합니다.
‘덜어내기’,
혁신학교를 하면서 늘 외쳐대던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작 제 삶에서는 실천하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녀와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덜어내 보려고 합니다. 그녀도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지 않을까요?
앞으로 남은 6개월, 그녀(연구녀ㄴ)를 제대로 만나보려 합니다.
*이 글은 2018학년도에 '전문연구년'을 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컴퓨터에서 어떤 자료를 찾다가 문득 발견하여 이곳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