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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ul 16. 2022

양귀비꽃

-교직원동아리 '어쩌다작가의 칠칠맞은 글쓰기'에서 쓴 글입니다.

집 근처 하수와 오수가 섞여 내려가던 냄새나고 지저분한 하천이 새로운 주택단지가 인근에 크게 들어오면서 재정비를 해 이제는 온종일 사람들이 거니는 산책로가 되었다. 그런데 잘 만들어 놓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쓰레기가 방치되고, 날벌레가 꼬여 항의 민원이 빗발쳤다. 그래도 시청과 LH는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며 아랑곳하지 않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고층아파트처럼 산책로의 잡초는 경사진 곳에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게 박아둔 시멘트 덩어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해서 자라 있었다. 그러다 두 기관의 책임 공방이 끝났는지 며칠 전부터 ‘**인력’이라 쓰인 버스에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할머니들을 가득 태우고 와 잡초를 뽑고 가뭄에 잘 자랄까 걱정이 되는 어린 풀(꽃)들도 심고 있었다. 

그 할머니들을 보며 호미는 제대로 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잡초는 거의 사라지고, 처음 하천을 정비할 때 봤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데 잡초가 사라진 자리에 할머니들의 손에 뽑히지 않고 홀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붉은 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치매약을 처방받고 오는 길이었다. 그녀가 지난번에 들렀던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을 시켜 먹자고 했다. 평소 외식하면 무조건 따끈한 국물이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철칙이 깨진 날이었는데 그날의 볶음밥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절반도 채 먹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이 너무 돼서 맛이 없다. 지난번 하고는 영 딴판이구만.”

요새 입맛이 떨어져 그 어떤 것을 시켰어도 비슷한 얘기를 했을 테지만 그래도 막내는 중국집 주방장을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밥에 윤기가 하나도 없네. 그러니 계란이랑 밥이랑 따로 놀지.”

그래도 그녀는 식당 입구 자판기에서 공짜로 뽑아 마실 수 있는 믹스커피는 절대 빼놓지 않았다. 

느그 아부지가 그 일 때문에 놀라서 집 앞에 있는 저 백련초를 다 뽑아부렀당께.”

중국집 마당 한쪽에 잘 자란 백련초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나 보다. 

그녀가 먼저 ‘그일’을 꺼내다니.     



중3,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막내는 부모가 사는 고향 집에 내려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경기도 부천으로 멀리 유학을 떠나 매번 방학 때나 되어야 막내는 집에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내려오면 군내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가야 하지만 그래도 또래 사촌 동생이 있는 작은집에 매번 놀러 갔다. 그러다 보니 사촌 동생의 친구들과도 어느새 동무가 되었다. 그 동무 중에 특히 사촌 동생과 친했던 어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쟤가 걔여? 엄니가 그거 심어가꼬 잡혀갔다는 그 집?”

그 아주머니는 사촌 동생에게 물었고,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렸던 막내는 본능적으로 자신에 관한 얘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사촌 동생은 당황하며 “저는 몰라요.”라고 얼버무렸다. 

막내가 사촌 동생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들은 몇 번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함께 보내며 어울려 놀았으나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그날의 얘기가 그녀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막내는 알게 되었다.    

 

방학 때 내려오면 無學이라 (겨우 본인의 이름 정도만 읽고 쓸 수 있는) 막내의 부모는 그동안 모아놓은 종이 뭉치를 꺼내놓았다. 그중에서 필요가 없거나 기한이 지나서 불쏘시개로 쓸 것과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게 막내의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것들은 안방 수납장에 차곡차곡 모아놓았는데 그래 봐야 세금이나 공공요금을 낸 영수증을 제외하면 별 거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는 양말 서랍을 뒤지다가 깊숙한 곳에서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전에 구분하면서 봤던 문서(종이)와는 사뭇 다른 형식의 서류였다. 낯익은 그녀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살펴보니 법원으로부터 온 서류였다.

(그때 서류의 문구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앵속 밀경작 사범으로 마약관리법을 위반하여 징역 6개월을 선고한다. 다만,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한다.’


처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앵속이 ‘양귀비’의 공식적인 이름이라는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문서를 보니 몇 해 전 사촌과 그 아주머니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고, 사촌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앵속’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재배하면 안 되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푸성귀를 심던 텃밭 한 귀퉁이에 그것을 몰래 심었고, 그게 발각돼 감옥에 다녀온 것이다. 다만, 시골에서 관절이 아프거나 배앓이를 할 때 즙 내 먹고 술 담가 마시면 좋다는 소문이 나서 당시 여러 집에서 밀경작을 하고 있었기에 징역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모양이다.      



요즘은 양귀비의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마약 성분이 전혀 없는 개양귀비를 공원이나 산책로에 많이 심는다. 막내는 그 꽃을 볼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산책길에서 만난 그 개양귀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붉은 꽃 가운데 까맣게 수술 같은 것이 있는데 그걸 보며 그녀를 많이 닮은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쳐 먹을 땅 한 떼기 없는 집안에 시집와 자식 여섯을 낳아 기르다 공교롭게도 딸 셋을 모두 여섯 살 때 잃었다. 둘은 병원 한 번 데려가 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잃었고, 다른 하나는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경운기에 치여 잃었다. 그러니 자식 잃은 속이 파랗다 못해 까맣게 숯검정처럼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러다 붉은색 한가운데 자리 잡았을 테지.      



“서울서 식모살이하고 내려와서 방에 드러 누웠는디 셉(대문)에 사람들이 와서 쑥덕쑥덕해야. 그때 내가 위험한지 딱 알았거든. 근데 그 사람들이 그것을 싹 뽑아서 시드라. 눈치 챘제 인자. 어디서 나서 했냐고 해서 난 끝까지 안 가르쳐줬제. 또랑에 하다 곱게 펴서 그놈을 따다 심었더니 그렇게 됐다고, 그게 번쳐서 그렇게 됐다고 했제. 근디 조사받을 때도 몇천 번을 물어. 어디서 났냐고?”     

치매가 있어도 서른 해가 넘은 일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절대 어느 집에서 줬는지는 얘기하지 않아 그 집에서 정말 고마워했다는 뒷얘기를 할 때는 마치 무용담을 털어놓는 거 같았다. 그동안 한 번도 그녀가 직접 얘기하지 않아 자식들마저 묻어두고 절대 꺼내지 않던 그일. 그녀는 쌍화차 마시기 위해 들른 다방에 막내의 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징역살았제. 순천서. 한 달 동안.” 

아마도 한 달이라는 기간은 구치소에서 재판받기 위해 보냈던 기간이었던 거 같고, 1심에서 ‘집행유예 2년’으로 선고가 나자 풀려난 것으로 보였다. 

“아이고, 시상에. 인자 팔십이 넘었지만 몇 살 안 먹어서부터 벨놈의 시상을 다 살았다. 벨놈의 시상을 다 살었어.”

해마다 오뉴월 붉은 양귀비꽃은 필 것이며, 막내는 그때마다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붉은색을 유난히 좋아해서 몇 안 되는 외출복이 온통 붉은 계통이었다는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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