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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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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Aug 26. 2022

학교에서 만난 세 남자

   

그날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7시가 되기 전에 출근해 사무실을 쓸고 닦는 일, 냉장고에 있는 시리얼로 대충 때우는 아침, 어제 못다 한 공문처리와 밀린 활동지 검사.

교실 반 칸보다 좁은 사무실에 책상 4개, 아이들 조사용으로 쓰는 테이블까지. 사무실 모퉁이에 비디오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온종일 찍은 다음 10배속으로 돌려보면, 어느 날에 찍었는지 쉽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저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사무실의 두 분 선생님은 이미 퇴근했고, 관사에 가봐야 특별할 게 없어 꿈지럭꿈지럭하며 시간을 보내다 회색빛 세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사무실을 나왔다. 학교는 산자락 밑에 있는 데다 주변도 온통 논과 밭이라 적막하다 못해 쓸쓸함마저 진하게 풍겼다. 주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반대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끔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오니 조심하라는 당직기사님 얘기가 순간 떠올랐다. 걸음을 멈추고 기세를 잃어가는 희미한 빛에 드러난 그 대상을 미간에 힘을 주며 쳐다봤다. 그것은 멧돼지도 당직기사님도 아닌 세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누구지? 가서 알아봐야 하나?’

‘아니야. 이미 퇴근했잖아. 그냥 가.’

퇴근과 함께 책임의 굴레에서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과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부서장으로서의 책무성이 일순간 요동치며 싸우고 있었다. 

‘아직 학교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완전히 퇴근한 거는 아니야.’

결국 학생부장으로서의 책무성이 이기고 말았다. 패배한 직장인의 해방감을 달래며 실루엣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내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실루엣이 황급히 건물 뒤쪽으로 사라졌다.

‘분명 뭔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셋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너무 빠르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놓치지 않을 속도로 적당히 거리를 두며 뒤를 쫓았다. 본관 서쪽 모퉁이를 돌자 여기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던 듯 그들은 멈춰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는 멀어서 보이지 않았던 몽둥이 같은 게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게 아닌가.

‘우리 학교 애들이 어디 가서 사고를 쳐 동네 양아치들이 찾아왔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약간 거리를 두고 물었다. 절대 떨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게.

“뭐 하시는 거예요?”

그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는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잠깐만요. 잠깐만 거기 서봐요.”     

    

전기포트의 물이 다 끓었는지 ‘딸깍’ 소리를 내며 버튼이 올라갔다. 5개의 머그잔에 녹차 티백을 담고 4분의 3정도 차오르게 뜨거운 물을 부었다. 

‘만약 교감 선생님이 그때 전화를 안 받으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슴푸레 몽둥이로 보였던 것은 가까이서 보니 쓰레기를 주울 때 쓰는 기다란 집게였다. 그리고 한 명의 손에는 50리터 쓰레기봉투도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이 일상적이지 않아 어떻게 된 사연인지 물었는데 도통 대답해주지 않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만 했다. 그래서 급히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온 교감 선생님은 “날도 추운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라며 그들을 교무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내게 따뜻한 차 한 잔씩을 부탁했다. 전기포트의 물이 끓는 동안 이것저것 궁금해서 물어보는 교감 선생님과 비밀지령을 받은 듯 최대한 말을 아끼는 그들과의 대화는 식탁에서 나누는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처럼 뚝뚝 끊어지고 있었다. 머그잔의 녹차 티백에서 우러난 찻물이 점차 찻잎 본연의 색으로 돌아갈 때쯤 그중 한 명이 어렵게 입을 뗐다.

“저희는 이 학교 졸업생입니다. 제가 취업을 앞두고 자소서를 쓰고 있거든요. ‘물 맑고 공기 좋은 퇴촌에서 태어나 &&초와 @@중을 졸업하고….’까지 썼는데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럴까?’ 며칠을 고민하다 보니 아마도 @@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요? 어떤 부정적인 인식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 친구들 모두 공감할 거예요. 전국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학교, 학교폭력이 엄청 많은 학교로 @@중이 소문이 자자해요. 그리고 동네에서 교복 입고 버젓이 담배 피우는 애들도 정말 많고요. 어쩌다 학교 오면 학교가 온통 쓰레기 천지에요. 담배꽁초, 과자봉지, 어떤 날은 소주병도 몇 개씩 있어요.”

그 졸업생의 얘기 중 틀린 거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알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학교의 현실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듣는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바꾸고자 혁신학교 신청을 해서 지정된 지 1년이 지났건만 지정 전과 달라지는 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져서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주말에 와서 쓰레기를 주웠어요.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다른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못 와서 마음이 계속 불편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이 두 친구에게 했더니 “그럼, 같이 가자.”고 해서 오늘 셋이 함께 온 거에요.”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누군가 내 몸속 전기포트의 전원을 켠 듯 서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남자의 마지막 말에 그만 벌겋게 달아오른 내 마음이 ‘딸깍’ 소리를 내듯 말을 쏟아내 버렸다.

“이제부터는 오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주울게요. 제가 일찍 출근해서 쓰레기 주울 테니까 앞으로는 오지 마세요.”     

그들과의 만남은 일주일 전 급성 탈모로 비급여 탈모약 처방을 받고 약국을 향해 걸어가며 ‘모든 걸 내려놓고 남은 초빙 3년만 때우고 가자’라고 다짐했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학교혁신을 위해 집에서 60km가 넘는 이곳까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려오게 했던 그 마음. 

생활 태도도 학습 능력도 매우 부족하지만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던 그 마음. 

학교에 대한 신뢰라고는 한오라기도 없는 학부모들을 만나 소통의 통로를 조금이라도 열어보겠다던 그 마음. 

지역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학교의 이미지를 마을로 들어가 교육공동체로 바꾸어보겠다는 그 마음.

이 모든 것을 며칠 전에 똘똘 말아 쓰레기 덤불 속에 던져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집게로 다시 끌어 올려준 것이다. 

그때부터 3년 동안 거의 매일 7시부터 8시까지 학교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첫해는 혼자 주웠고, 그다음 해부터는 선배와의 사연을 들려주며 학생자치회 아이들과 함께 주웠다. 그게 학교의 전통이 되어 내가 떠나고 없어도 계속 뒤를 이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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