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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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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Aug 26. 2022

이기고도 진 게임

‘0.0’

기대에 찬 얼굴을 하며 큰아들이 먼저 디지털 저울로 올라간다.

디지털의 숫자가 0에서 시작해 점점 올라가다 ‘70.0’에서 멈췄다.

큰아들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오늘은 못 이기겠죠?’ 하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 상황을 아내와 막내아들도 덩달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보름 전이었다. 큰아들은 뜬금없이 30만 원이 넘는 ‘닌텐도 스위치’를 사달라고 했다. 게임은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너무 과한데도 말이다.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켜고, 하교하면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는지 고가의 게임기까지 사달라고 하니 절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얘기했다. 그런데도 큰아들은 포기를 몰랐다. 다음날은 작은아들도 큰아들의 사주를 받았는지 ‘닌텐도 스위치가 요즘 친구들 사이에 대세라’며 설득하려 했다. 아내는 “아빠가 알아서 해”라며 그 책임을 내게 맡겼다. 그동안 유사한 사례가 있을 때마다 우리 부부는 두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들어주고 말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고가인데다 더 많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쉽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들어주고 싶지 않아 큰아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지금부터 한 달 안에 아빠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면 사주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라 결혼한 뒤로 가장 적은 몸무게가 나가고 있었다. 반면 중1 큰아들은 경도비만에서 고도비만으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이대로 두다가는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좋아. 한 달 되기 전이라도 내가 이기면 사주는 거지?”

숨쉬기 운동 외에는 전혀 하지 않는 큰아들에게 운동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더불어, 운동에 쏟는 시간만큼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 설령 내기에 진다고 해도 ‘졌잘싸’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다음날부터 큰아들은 아내가 차려준 밥 대신 아침저녁으로 바나나 하나씩만 먹었다. 그렇게 며칠을 했는데도 예상보다 몸무게가 크게 줄어들지 않자, 집이 있는 14층까지 승강기 대신 계단을 이용해 걸어 다녔다. 먹는 것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니 금세 효과가 나타났다. 

내기를 시작한 지 10일쯤 지나자 “아빠, 한 번 재볼까?”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디지털 저울은 큰아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보다 2킬로 정도 더 많은 몸무게로 돌려주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간 큰아들은 갑자기 옷을 걸쳐 입고 나오더니 집 앞 학교 운동장을 달리고 오겠다며 나갔다.

그렇게 다시 3일이 지나고 큰아들이 몸무게를 또 재자고 했다. 이번에는 단 5백 그램 차이가 났다. 매일 아침 배드민턴을 하고 먹는 것을 조금씩 줄였지만 내 몸무게는 거의 답보 상태였는데, 큰아들은 매일 조금씩 빠지더니 그새 턱밑까지 추격해 온 것이다. 내일이면 아빠를 이길 수 있을 거라며 큰아들은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배드민턴을 하고 온 내게 ‘아빠가 졌으니 당장 게임기를 사내’라는 눈빛을 보이며 저울을 가져와 발밑에 두었다. 


기한으로 정한 한 달이면 큰아들에게 운동하는 습관이 생길 것이다. 타이어 회사의 캐릭터 같은 몸매도 일반적인 중1 학생들처럼 변화될 것이다. 한 달 사이에 변한 자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유지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런 예상을 하며 한 달 후에 기분이 좋게 져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큰아들은 독하게 다이어트를 하더니 보름이나 일찍 내기를 끝내려고 했다.

‘70.0’

큰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빠, 이제 항복하시죠?”

대학교 때 혼자 자취하면서 못 먹었을 때나 가능했던 몸무게가 나오지 않는 이상 큰아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미 승리를 직감한 듯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큰아들은 저울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결코 쉽게 게임을 내줄 수는 없지.’ 다른 날과 다르게 최대한 가볍게 하려고 옷을 다 벗고 팬티 차림으로 저울에 올라갔다. 격투기 선수들이 경기 전 계체량을 재는 것처럼. 디지털 저울의 숫자가 발밑에서 요동을 쳤다. ‘69.9’와 ‘70.0’을 왔다 갔다 하던 숫자는 큰아들보다 백 그램 적은 ‘69.9’에서 멈춰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아니. 꼭 이렇게 해서 이겨야겠어?”

바나나 하나로 밥을 대신하고, 등하교 때 14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보름 넘게 노력한 게 수포가 되어서였을까. 무뚝뚝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아들이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왜 울어. 내일 다시 재면 되지?”

“나 안 해. 더러워서 이제 안 해.”

큰아들은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막내아들과 아내도 ‘진짜 너무 한다’라는 표정을 하며 쳐다봤다. 절대 져주지 않는 아빠에 대해 분함인지, 게임기를 살 수 없음에 대한 설움 때문인지 한참 동안 큰아들의 방에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기 위해 나온 큰아들에게 물었다.

“네가 그동안 애쓴 거 알아. 하지만 아빠도 그동안 진짜 힘들게 노력했어. 다른 때보다 적게 먹고 배드민턴도 더 열심히 치고.”

“...”

“그래서 내가 타협안을 생각해 봤는데 들어볼래?”

“뭔데?”

“닌텐도 스위치 가격의 절반을 아빠가 낼 테니까 나머지 절반을 네가 내. 어때?”

“내가 돈이 어딨어?”

“그래서 아빠가 15개월 할부로 해줄게. 네 용돈에서 매달 만 원씩 내는 거야. 어때?”

“......알았어.”     


그때의 내기를 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얘기한다.

“아빠가 그때 그렇게 독하게만 안 했어도 내가 지금 이 몸은 안 됐을 거야.”

큰아들은 그 뒤로 ‘다이어트’의 ‘다’도 못 꺼내게 한다. 고2가 된 지금은 몸무게가 0.1톤에 육박하는데도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 않단다. 그때 이후로 바나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휴대폰과 컴퓨터, 게임기까지 생겼으니 게임하는 시간이 늘면 늘었지 전혀 줄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에 닌텐도 스위치에 연결해 운동하는 ‘링피트’라는 것을 사서 저녁 시간에 두 아들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처음 일주일은 거의 매일 하더니 요즘은 조금 뜸해지기는 했다.)      

큰아들과의 몸무게 대결뿐만 아니라, 아이들 어릴 때 함께 했던 장기, 씨름, 물놀이, 축구, 배드민턴 등을 할 때도 내가 이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가끔 일부러 져주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지루해서 그만두고 싶을 때나 빨리 끝내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이런 나를 보며, 아내는 ‘당신은 승부욕이 너무 과하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새벽같이 일어나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을 하고 출근을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게임을 이기고 출근할 때는 셔틀콕의 무게만큼 발걸음이 가벼운데, 지고 출근하는 날은 셔틀콕에 맞아 부러진 라켓처럼 기운이 팍 꺾여 종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짜증만 났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 800킬로가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따라잡고 싶은 마음에 더 빨리 걸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성인 남자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꼬박 걸어야 30일 정도에 완주한다는데 나는 27일 만에 종착지인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했었다. 


이제는 몸도 예전과 다르고, 지고 사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 예전만큼 승부에 매달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승부가 아닐 뿐 ‘승리를 향한 욕구’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듯하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앱에 찍힌 평균속도를 매일 체크하며 어제의 나와 여전히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쯤 ‘승부를 향한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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