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살아오지 못해서 '싼 게 비지떡'임을 알면서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시점에만 이르면 더 저렴하고 양 많은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먹거나 사용하다가 꼭 후회를 하는데 오랜 습성을 버릴 수가 없어서 여전히 그러고 있다.
이번 산티아고는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리고 말 것이다. 근데 그건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지난번에 물집 하나 없이 부지런히 걸어서 원하는 일정대로 산티아고에 갔으니 이번에는 앞만 보고 걷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제의 해프닝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일찍 생장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을 받고 바로 발카로스까지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제 비행기를 못 타서 오늘 오전에야 비아리츠에 도착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생장에 도착하니 이미 2시가 넘어버렸다. 그러니 발카로스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라 그냥 이곳 생장에 숙소를 잡았다. 그러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편의 회갑 기념으로 순례길을 걸으려고 하는 중년부부를 만나 같은 숙소에 머물며 같이 장도 보고 저녁도 함께 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첫날의 어색함과 적적함을 무엇으로 달래었을까. 아쉽게도내일부터는 걷고자 하는 계획이 서로 달라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겨울철에는 열지 않는 숙소가 많아 마음만큼 여유롭게 걷지는 못하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이번만큼은 무언가에 쫓기며 지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