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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02. 2024

5년 만에 풀린 오해

두 번째 산티아고 10일 차(Atapuerca-Brugos)

어디쯤이었을까?

분명 길에 있는 표식과 이정표를 잘 챙겨보며 걸었는데 어디쯤에서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일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5년 만에 찾아왔다.

5년 전, 유럽 친구들과 산토 도밍고에서 헤어져 혼자 길을 나섰다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한국남자분을 만났다. 그분도 초행길이었고 서로 의지하며 걷다가 비암비스티아(Villambistia)에 머물렀다.

다음날은 순례길에 몇 안 되는 대도시 부르고스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하루 만에 가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두도 못 낼 정도(43.4km) 아니어서 이른 새벽길을 나섰다. 길을 나서며 전날 밤 블로그에서 글을 떠올렸다.

'부르고스 들어가는 길이 두 가지인데 잘못 들어서면 개고생 한다.'

그날따라 햇볕도 유독 강해 오후로 접어들수록 온몸이 지쳐갔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표식을 확인하며 걸었다.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블로거가 말한 개고생길을 어느 순간 고 있는 게 아닌가. 고스 앞마을(Orbaneja Riopico)부터 숙소가 있는 부르고스 대성당 근처까지 10km가 넘게 뜨겁게 달궈진 아지랑이 피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몇 시간을 걸은 것이다. 결국 도착할 때는 한걸음도 더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시간이 너무 늦어 공립 알베르게는 들어갈 수가 없어 비싼 호텔을 잡아야 했었다.

오늘 그 길을 복기하며 잘못 진입한 포인트를 꼭 찾으려 더 살피며 걸었다. 그런데 그 오해는 정말 어이없게 풀리고 말았다.

5년 전 걸었던 길이 스페인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루트이며 일부 순례객들이 다니는 또 다른 루트가 있다는 것을 오늘 함께 걷던 그가 알려주었다. 부르고스 공항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도로 따라 걷지 않고, 왼쪽으로 접어들면 순례길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식 루트보다 거리가 더 줄어드는 것은 아니나 나중에 천변을 따라 걷는 길과 만나 훨씬 지루하지 않았다.

오늘은 해가 나지 않았지만 햇볕이 강한 날이면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그늘길을 걸을 수 있어 훨씬 덜 힘들 거 같았다.

'앞장서서 걷던 내가 길을 잘못 들어 다른 분도 힘들게 만들었구나!'라며 5년 동안 자책했었는데...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닌 초보자라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황이었음을 이해하게 됐다. 마침내 5년 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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