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무게까지 약간 부족한 100kg가 마치 혈중알코올농도 0.1을 넘는 만취자처럼 바람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니 저절로 두 눈에 눈물이 맺혀 거센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곧이어 그리 굵지 않은 비가 바람과 함께 온몸을 강타했다. 급히 배낭의 레인커버를 씌웠다. 그가 앱을 확인하더니 1시간 정도 내리고는 그칠 거라고 해서 우비는 입지 않았다. 그 비는 오락가락을 반복하며 점심때까지 내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30km 정도만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제 머물기로 한 벨로라도 숙소가 무슨 사정인지 안 된다고 해서 급히 일정을 조금 짧게 조정(27.5km)하여 그라뇽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가 그만큼 늘어났다. 그래도 지난번 팜플로나에서 에스떼야까지 걸었던 거리(47km)보다는 적은 거 같아 마음을 놓았는데 막상 다 걷고 나니 지금까지 걸었던 길 중에 가장 긴 거리를 걸었다.
48km.
쉴 때마다 신발을 벗어 발을 말리는 나와 달리 그는 도착할 때까지 전혀 신발을 벗지 않는데 오늘 도착해 보니 그의 두 발 모두 물집이 잡혀 있을 정도로 힘든 길이었다.
출발한 지 거의 12시간 만에 2023년 마지막 해넘이를 보며아타푸에르카(Atapuerca) 숙소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 많이 걸었으니 내일은 20km 정도만 걸으면 부르고스에 도착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