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같은 길인데도 계절이 바뀌니 전혀 다른 길처럼 다가온다. 가끔 '이렇게 아름다운 길인데 왜 기억에 전혀 없지?'하고 스스로 묻다가 '아, 계절이 달라서 느낌이 다른 거구나!' 스스로 답을 찾기를 얼마나 자주 하게 되는지 모른다.
입맛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산티이고 순례길도 맛이 참 다양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이 안 보이게 길어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쓴맛의 길도 있고,
메세타 고원처럼 몇 시간 동안 나무 하나 없는 평평한 들판을 걸어야 하는 싱거운 맛의 길도 있다. 오늘처럼 푸른 하늘, 한 뼘만큼 자란 초록밀밭,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갈아놓은 거대한 농지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조화롭게 들어와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달콤한 맛의 길도 있다.
때로는 다시 오고 싶지 않을 만큼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매운맛(이건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해야 하나)의 길도 있다.
나 역시 이제 두 번째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절대 책을 보거나 영상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직접 와서 맛을 보기 전에 함부로 길에 대해 말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