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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Dec 31. 2023

네가 길의 맛을 알아?

두 번째 산티아고 8일 차(Nájera-Grañón)

두 번째 산티아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A가 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어때요? 올레길하고 달라요?"

제주 올레길을 많이 걸어보지 못해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B가 툭 나섰다.

"그냥 올레길 걸으면 돼."

"B도 산티아고 가 봤어요?"

"아니. 다녀온 사람이 쓴 책 봤어."

순간 할 말이 탁 막혔다.

과연 책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5년 전 가을에 걸었던 길을 겨울에 다시 걸으며 벌써부터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엔 봄이나 여름에 꼭 와야지!'

분명 같은 길인데도 계절이 바뀌니 전혀 다른 길처럼 다가온다. 가끔 '이렇게 아름다운 길인데 왜 기억에 전혀 없지?'하고 스스로 묻다가 '아, 계절이 달라서 느낌이 다른 거구나!' 스스로 답을 찾기를 얼마나 자주 하게 되는지 모른다.

입맛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산티이고 순례길도 맛이 참 다양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이 안 보이게 길어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쓴맛의 길도 있고,

메세타 고원처럼 몇 시간 동안 나무 하나 없는 평평한 들판을 걸어야 하는 싱거운 맛의 길도 있다. 오늘처럼 푸른 하늘, 한 뼘만큼 자란 초록밀밭,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갈아놓은 거대한 농지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조화롭게 들어와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달콤한 맛의 길도 있다.

때로는 다시 오고 싶지 않을 만큼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매운맛(이건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해야 하나)의 길도 있다.

나 역시 이제 두 번째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절대 책을 보거나 영상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직접 와서 맛을 보기 전에 함부로 길에 대해 말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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