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 유해진, 배정남 씨가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내용의 '스페인 하숙'이라는 TV프로그램이 방영된 적 있다. 그때는 첫 번째 산티아고를 다녀온 뒤라 마치 아직도 그 길 위에 있는 것처럼 느끼며 본방을 챙겨봤었다.
이제는 영상 속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인생 제2막을 이곳에서 해보려고 생각 중이다. 지인들에게는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를 해놓고 있다.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져서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 10년 동안 준비하려고 한다. 일단 영어와 스페인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여력이 되면 방학 때마다 미리 신청해서 알베르게 운영을 돕는 자원봉사를하려고 한다. 알베르게가 어떻게 운영이 되고, 어떤 절차를 거쳐서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조금씩 알아볼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되면 퇴직 후에 곧바로 와 매니저로 일하며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아 해 보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을 때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운영 방침도 나름 생각했다.
베드는 최대 8개,
저녁은 매운 갈비찜, 아침은 야채죽.
가격은 그때 시세 반영.
지역은 산솔(Sansol).
오늘 내내 '스페인 하숙' 사업 구상을 하며 걸었다. 마침 오늘 머물게 된 까리온의 공립 알베르게에 주방시설이 있어 제대로 된 요리를 이번 순례길에 처음으로 하게 됐다. 헝가리 친구는 "요리는 자신 없다"라며 냉동피자를 사 와서 먹었고, 나는 가지고 있던 재료와 사온 재료를 이용해 삼겹살과 양송이버섯구이를 만들었다. 누가 줘서 가지고 다니던 스페인쌀로 냄비밥도 했다.
10유로도 안 된 돈으로 이렇게 잔뜩 만들어 먹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스페인의 좋은 재료로 음식 만들어 먹는 것도 순례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그렇다면 공용주방을 만들어야 하나?
현재까지의 사업 구상 속엔 공용주방은 없고 순례자가 저녁을 사 먹겠다고 하면 '매운 갈비찜'을 대표 메뉴로 만들어 내놓을 생각이었다. 벌써부터 하숙집 운영할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내일 걸으며 다시 생각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