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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06. 2024

이번만 이기적으로 살게요

두 번째 산티아고 14일 차(Carrión-Sahagún)

40km를 가는 날이라 서둘러 준비하기 위해 5시쯤 일어나니 가족단톡방에 두 아들의 졸업식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두 아들, 졸업 축하해. 아빠가 못 가서 미안.'

아내의 허락을 받고 두 번째 산티아고를 준비하며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 어머니의 건강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데 당뇨병도 있으셔서 지난번에는 저혈당으로 큰일 날뻔한 적이 있었다. 주 6일 집에 오셔서 어머니를 성심성의껏 돌봐주시는 요양보호사님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기억력이 좋아진 거 같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의 건강은 매우 양호해서 마음의 부담을 크게 덜었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두 아들의 졸업식이 순례길 중간 일정쯤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직 내 일정에만 온정신을 몰두하느라 두 아들이 이번에 중고를 각각 졸업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같은 동네에 있는 두 학교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졸업식을 거행한다고 알려왔다. 날이 다르거나 시작 시간이라도 다르면 한 동네이니 아내가 이쪽저쪽 가면 되는데 동시에 진행되는 졸업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에 아내와 상의해서 내린 결론은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네 졸업식은 안 와도 되니 형은 동생에게, 동생은 형에게 엄마를 양보했다. 그래도 동생은 3년 후에 다시 기회가 있으니 형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엄마가 참석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를 하고 떠나왔다.


그런데 새벽에 확인한 사진은 엄마가 동생 졸업식에 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유도 궁금하고 함께 못 한 미안함에 그동안 번도 안 했던 (현지시간) 새벽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졸업식 전날 형이 통 큰 양보를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는 "당신이 없어서 서운하네. 많이 아쉬워."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남편의 역할, 아빠의 빈자리를 혼자서 한 달 넘게 감당하고 있으려니 서운함이 수시로 북받쳤을 것이다. 아무리 흔쾌히 보내줬다고 해도 말이다.

시작은 졸업식에 못 간 아빠가 갖는 두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는데 길을 걷는 동안 점점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여보, 이번 한 달 열흘만 이기적으로 살고, 돌아가서는 그동안 못다 한 남편과 아빠 역할 더 열심히 할게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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