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7개 자치 지방 중 가장 커서 그런지 이정표와 표지석이 계속 같은 디자인이었는데 마침내 디자인이 다른 표지석을 만나게 됐다.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Galicia) 주에 들어선 것이다.
이 경계를 넘기 위해 우리는 28.4km의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특히 막판 5km는 완전 급경사의 오르막이라 잔설이 있는 고산지대를 걷는데도 땀이 겉옷까지 적실 정도로 힘들었다.
남은 순례길에서 이렇게 높은 산을 넘는 경우는 이제 없다. 도달할 산 정상을 보면 걱정과 두려움만 생겨 오르막길에 접어들면 발 내디딜 2~3미터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멀어 보이던 곳에 도달해 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며 이제 반백의 고개를 넘고 있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곳으로 떠나기 전에 수년간 함께 했던 학교밖 모임들에 탈퇴를 알렸다. 그들과의 작별은 순간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작년에 반년 넘게 고민하여 결정한 것이다. 그동안 모임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인 참여로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과 성을 다한 모임들이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그 '열정'이 더는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쪽 다리만 겨우 걸치고 있었는데 그렇게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열정을 찾아야 하나 그럴 자신도 없어서 과감히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더불어 학교에서 맡고 있던 부장보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관리자분들은 순례길 끝나고 돌아와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인생 절반의 고개를 넘기는 동안 '사회 속의 나'를 주로 생각하며 살았던 거 같다. 이제는 '본연의 나'를 더 찾고 싶다. 나를 위한 시간을 더 만들고 싶어 외부활동도 거의 하지 않을 생각이다. 가족을 돌보며 그 안에서 나를 다듬어가는 시간으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
이번 두 번째 산티아고가 그 경계를 넘는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1,200m가 넘는 O Cebreiro에서 이제 잘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