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그가 인상을 쓰며 'back'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배낭이 무거워서 그런가 했다. 길을 걷다 보면 처음엔 그냥저냥 메고 갈만한데 갈수록 배낭의 무게가 두 어깨를 짓누르고 나중에는 발을 떼기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누구는 단 0.1g도 덜기 위해 옷의 상표를 다 제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만큼 장거리 순례길에서 배낭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다.
그런데 그는 기본적인 본인 짐 외에도 네스카페 믹스, 빨래 세제 등 혼자였으면 안 챙기거나 조금만 챙겨도 될 것을 내 몫까지 더 가져온 것도 등을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겠다.
걷는 길에 들린 바르에서 커피를 마시다 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나는 내일 4시에 출발할 거야."
그동안 우리는 그날 걸어야 할 길이 20km대이면 8시, 30km대이면 7시, 40km대이면 6시에 출발하기로 얘기를 나누었다.
내일 포르토마린까지는 40km 대니 6시에 출발하면 되는데 그가 4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이해를 못 해 어리둥절해 있자, 다시 그가 말을 덧붙였다.
"내가 지금 아파서 내일 너랑 같이 출발하면 포르투마린에 저녁에 도착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일찍 가려는 거야."
"사리아(Sarria)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이야?"
"네 걸음이 빠르니 아마도 그쯤(20km쯤)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엊그제부터 아픈 다리 때문에 빨리 못 걷고 있는 그. 그래서 나 역시 평소보다는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그가 내 걸음속도를 맞춰 걷느라 몹시 힘들었던 모양이다.
오늘 트리아카스텔라숙소에서 각자 저녁을 만들어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 나는 동네를 둘러봤다. 5년 전에 이 동네를 지나치며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도 사고, 그 맞은편 약국에서 다 떨어진 바셀린통을 보여주고 바셀린연고를 샀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슈퍼와 약국을 찾아 나섰더니 슈퍼는 토요일이라 1시에 문을 닫아버렸고, 약국 또한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혹시라도 그 사이에 폐업해서 다른업종이 들어오지는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지금도 건재하고 있어서 괜히 안심이 되었다.
작은 동네라 몇 발짝 안 걸은 거 같은데 반은 돈 거 같다. 다시 숙소로 돌다오니 마침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내일 4시가 아니라 5시에 출발할게. 등이 너무 안 좋아서 평속 4km 정도로 천천히 가야 할 거 같아."
그가 오전에 바르에서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내일은 따로 걷게 되지만 이런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해. 나는 이 길을 꼭 같이 끝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