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미노 Jan 15. 2024

A와 B는 어디쯤에서 다시 만날까?

두 번째 산티아고 23일 차(Triacastella-Portomarin)

문제

A와 B는 20km 떨어진 사리아(Sarria)를 거쳐 40km 떨어진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걸어가야 한다. A는 4(km/h)의 속도로 걷고, B는 5(km/h)의 속도로 걷는다고 할 때, 이 둘이 다시 만나는 지점은?(단, 나머지 조건은 A, B가 같음)

1. 사리아 도착 전에 만난다.

2. 사리아에서 만난다.

3. 사리아와 포르토마린 사이에서 만난다.

4. 포르토마린에서 만난다.

5. 기타(본인이 생각하는 답 적기)


위와 같은 수학 문제가 출제되었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그의 침대가 텅 비어 있다. 5시 26분.

'벌써 출발했구나. 천천히 따라갈 테니 조심히 가고 있으라는 인사도 못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뭔가 놓고 간 게 있었는지 확인하러 들어왔다가 깨어 있는 나를 보더니 "Good morning"하고는 바로 나갔다. 5시에 출발한다고 했었는데 30분 정도 늦어졌나 보다.


그때부터 준비해 6시 반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길로 나섰다. 우비의 뒷자락이 배낭에 걸려 내려가지 않으면 서로 내려줬는데 오늘은 혼자서 낑낑대며 해결해야 했다. 갈림길에서 까미노 표시가 안 보이면 그가 바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줬는데 이젠 직접 찾아야 한다. 혼자서도 잘 다녔는데 2주 정도 나도 모르게  길들여졌구나. 오늘은 온전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

한참을 걸어 더는 해드렌턴을 쓰지 않아도 될 때까지 거의 쉬지 못하고 걸었다. 이른 시간이라 문 여는 바르도 없거니와 비를 피해 쉴만한 곳도 딱히 찾기 어려웠다.

오늘 내가 생각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포르토마린으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서 서로 만나 기념사진 찍고 숙소로 가는 것이다. 그래야 그가 원했던 자신의 속도에 맞게 거의 완주를 한 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리아쯤에서 만날 거라는 그의 예상대로 맞춰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사리아 바르에서 여유 있게 카페콘레체를 마시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진을 찍으며 마치 산보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그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왓츠앱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괜히 내가 어디인지 알면 그가 안 가고 멈춰서 기다리게 될 테니까. 그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내 걸음 속도에 맞추느라 오늘도 엄청 고통스러워할 테니까.

사진을 찍으려고 바지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더니 그가 보낸 왓츠앱 메시지가 와 있다. 본인은 (산티아고까지) 105km 남은 지점의 간이쉼터에 있다는 글과 사진이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I'll follow you slowly.'

괜히 기다릴까 봐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 2.5km 떨어진 곳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급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예상한 최고의 시나리오대로 연출되지 않을 거였다. 그때부터 정말 6(km/h)의 속도로 부지런히 걸었다. 우비 안에 입은 옷들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걷는 동안 그가 보낸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하지만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인지 대충 짐작이 되어서. 거의 대부분의 순례자들처럼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지석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으리라.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걸었고, 나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더디게 걸었다. 그가 벌써 100km 표지석까지 갔다면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었다.

중간에 한 번쯤 쉬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정말 빠른 걸음으로 100km 표지석 앞곧장 도착했다. 그는 이미 자리를 떴는지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개서 우비도 벗고 숨도 고르기 위해 배낭을 내려놓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방금 지나치면서 봤던 바르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평소 같으면 무조건 들렸을 것이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쓱 보고 지나쳤는데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네가 보낸 메시지를 지금 봤어. 미안해'

그러면서 방금 찍은 100km 표지석 사진을 보냈다. 바로 그의 답장이 왔다.

'알았어. 그럼 나도 따라갈게.'

그렇게 우리는 포르토마린을 9km 정도 남기고 다시 만났다. 후반부라 그런지 그는 더 힘겹게 었다. 그의 말로는 오르막과 내리막길에서는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걷는다고 했다. 여전히 등도 아프다면서.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연출되지는 못했지만 각자 스타일대로 30km 정도를 걸었으니 어느 정도의 목적은 달성한 듯싶다. 그리고 포르토마린 앞을 흐르는 Miño강의 다리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따로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