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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17. 2024

이 맛있는 걸 왜?

두 번째 산티아고 25일 차(Palas de Rei-Arzúa)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어?"

"이런 걸 굳이 왜 먹어!"


며칠 전부터 스페인 문어요리 뿔뽀(pulpo)가 새겨진 식당 판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끼고 있는 갈리시아 지역에 들어와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특히 뿔뽀로 유명한 멜리데(Melide)를 지나게 되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동안 여러 번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참은 것은 그가 해산물 요리를 엄청 싫어하는 데다 특히 뿔뽀 요리에 대해서는 매우 혐오스러워했다.

"어떻게 머리를 강 잘라버린 문어 요리를 먹을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타협을 봤다. 그는 소고기요리, 나는 문어요리를 시켜서 먹자고.

소금물에 삶아낸 뒤 별다른 양념도 하지 않은 거 같은데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하며 몹시 부드럽다. 먼저 나온 우리나라 시래기감잣국 같은 갈리시아 수프와 커다란 문어다리 2개를 먹었더니 배가 금방 불렀다.

그렇게 먹어서 저녁은 간단히 먹으려고 했는데 저녁에 빅이벤트가 생겨버렸다. 우리 방에 먼저 와 있던 이탈리안 플라비오 브렌따(Flavio Brenta) 할아버지가 자신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해줄 테니 같이 먹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할아버지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그러겠다고 하고 우리는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샀다.

슈퍼마켓에 다녀오니 이미 식탁 세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덕션이 고장인지 안 되어 결국 1구짜리를 급히 가져와 그것으로 요리를 하느라 좀 늦어졌다. 플라비오 할아버지는 까르보나라에 아무 베이컨이나 넣으면 안 된다며 자신이 산 베이컨이 진짜라며 자랑도 잊지 않으셨다.

이탈리아에 가보지 않아서 정말 그런 맛인지 모르나 정작 한국에서 먹었던 까르보나라에 익숙한 내 입맛에 그리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거라 한 그릇 뚝딱 비웠더니 냉장고에서 또 뭔가를 꺼내신다. 손질된 생선과 홍합이다. 이것도 슈퍼마켓에서 사 오셨단다.

플라비오 할아버지는 요리를 하면서 'fresh 한 재료'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셨는데 해물요리를 싫어하는 헝가리 친구는 다른 이유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이미 배가 부른데도 호기심이 생겨 곁에서 말동무(주로 듣는 역할)하며 요리하시는 것을 지켜봤다.

생선요리는 깐 마늘을 작게 잘라서 올리브유에 살짝 익히고 거기에 생선을 넣고 소금과 후추, 레몬즙을 뿌리면 끝.

홍합 요리는 더 간단했다. 씻어서 삶다가 레몬즙 뿌리면 끝.

평소에 해산물요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감사할 뿐인데 오히려 플라비오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맛있게 먹어줘서 무척 고맙다" 하셨다.


오늘 우리 방에 바닷 내가 물씬 풍기지 않을까 싶다. 그는 무척 싫어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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