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혼자 또는 여럿이서 걸었던 길, 이색적인 건물, 머물렀던 숙소와 동네 가게 등 마치 며칠 전에 보았던 것처럼 낯설지 않은 여러 장면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 찍었던 사진을 종종 보고, 매일매일 썼던 글들을 읽고 또 읽어서였을까. 5년이란 시간이 무색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흘 전부터는 '진정 내가 이 길을 걸었단 말인가?' 스스로 묻게 될 정도로 꼭 처음 이곳을 걷는 사람처럼 거의 모든 게 생경했다. 왜 그럴까? 어느 길을 걸었든 모든 순례자들이 다 모이는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하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오늘까지도 그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흘 동안 계속 그 답을 찾으며 걸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스스로 납득이 된 답은 '산티아고 도착을 최종 목적으로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 800km 되는 이 길을 그때는 26일 만에 걸었다. 이번에도 다른 순례자들에 비하면 일주일 정도 빨리 걸은 편인데 27일이 소요됐으니 그때는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냅다 걸었던 거 같다.
그러니 뭔가 쫓기듯 걸으면 안 되었던 거다. 그런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이곳까지 와 한 달 동안 걷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놈의 몸에 밴 습관을 이 길에서마저 버리지 못했던 거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언제 다시 걷게 될지 모를 프랑스길을 최대한 눈에 담아보려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이번 까미노의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그동안 머물렀던 26개 마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내일부터는 다시 115km를 더 걸어서 유럽의 끝이라고 하는 피스테라(Fisterra )까지 걸을 예정이다. 이 길은 그도 무척 좋아하는 길이지만 지난 1차 때 나 역시도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꼭 걷고 싶다고 해 우리의 일정에 포함시켰다. 아마도 목표를 다 이루고 나서 편한 마음으로 걸었기에 더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