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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20. 2024

네게 목숨을 맡겨볼게

두 번째 산티아고 특별보너스 1일 차(Santiago-Negreira)

라시(동행하는 헝가리 친구)는 수다스러운 사람을 질색했다. 그렇다고 그가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곧잘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거의 매일 아내와 두 아들, 친구들과 통화를 하는데 그들과 주고받는 대화 목소리엔 생기가 가득 묻어 있다.

그런 그가 나와 이십일 넘게 지내면서 무척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어떤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면 내가 아주 간단한 말이나 표정으로 돌려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목마름을 단박에 해결해 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찾아왔다. 그의 친구 볼라쉬가 서프라이즈 방문을 한 것이다.

볼라쉬는 어제 오후 4시경에 우리가 머물게 된 산티아고 호스텔로 곧장 찾아왔다. 마침 라시가 헝가리순례자모임에 나가고 없었다. 그런데도 볼라쉬는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아주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낯선 이에게도 경계심을 쉽게 무장해제하게 만드힘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셋이 되어 피스테라까지 가게 됐다.

볼라쉬는 전기공학자라고 한다. 그의 설명으로는  전기 관련 특수분야로 헝가리 내에서도 100여 명 정도만 이 기술을 가져 급여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전혀 다른 분야에도 조예가 깊단다. 바로 버섯이다. 전에도 이 길을 라시와 같이 걸었는데 그때 길에서 딴 버섯으로 요리를 해줬을 정도라고 한다.

그때는 여름이라 쉽게 버섯을 찾을 수 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버섯이 없을 거라고 볼라쉬가 무척 아쉬워했다. 그런데 이곳 갈리시아 지방은 겨울인데도 날씨가 그리 춥지 않고 한낮에는 초여름처럼 햇볕이 따가울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보지 못할 거라던 버섯을 숲길에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찾아냈다.

'아는 사람 눈에는 그게 보이는구나!'

같이 가고 있던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버섯이 그에 눈에는 쉽게 들어온 모양이다.

살아오면서 야생버섯이라면 이미 목질화가 되어 '이것은 버섯이 아니라 나무가 아닌가?'라고 생각되었던 아버지가 산에서 따온 영지버섯이 전부였다. 그것도 그냥 관상용으로 텔레비전 위에 몇 년 간 놓여 있다가 먼지가 북이 쌓여 회색이 되어 버려지고 말았다. 그렇듯 내 인생에 버섯은 가게에서 사 먹는 식재료일 뿐 야생에서 직접 채취해 먹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저녁은 볼라쉬가 할 거야."

라시의 말을 듣는 순간 가끔 뉴스에 독버섯 잘못 먹고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보았던 게 떠올랐다. 그를 믿고 내 목숨을 맡겨도 될까?

"너는 어떻게 버섯에 관심을 갖게 됐어?"

"우리 집이 숲 속에 있기도 하고, 아내와 하이킹을 자주 해."

그러니까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닌 거였다. 그 순간 또 다른 버섯을 발견해 코에 가져다 내고 냄새를 맡더니 "No good" 한다.

"냄새로 먹어도 되는지 알 수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어. 어떤 곳에서 자란 것인지가 중요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 묵게 된 공립 알베르게엔 주방시설은 되어 있으나 오직 전자레인지만 있고 인덕션이나 가스레인지는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을 나가서 사 먹어야 했다.

이렇게 내 목숨은 운명의 날을 하루 더 미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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