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걸을 때는 모든 게 내 몸과 의지에 의해 결정됐다.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둘이 걸을 땐 그럴 수 없었다. 내 욕구와 의지가 있더라도 상대방의 상태를 보고 심경을 살피며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셋이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두 사람이 결정하면 크게 거슬리지 않는 한 따르면 되니까.
그런데 고작 하루를 같이 걸었을 뿐인데 다시 둘이 되어 버렸다. 어제부터 아픈 다리가 더 안 좋아진 라시가 걷는데 여간 힘들어하는 게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Are you okay?" 하면 바로 웃으며 "Okay!" 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숙소를 나와서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자 그가 걷다가 멈췄다.
"Are you okay?"
"No good."
진짜 힘든 모양이다. 풍경 사진도 찍고 일부러 느릿느릿 걸으며 맨뒤로 빠져서 라시 뒤에 섰다. 맨 앞에 볼라쉬가 가고 10m 정도 떨어져 라시, 그리고 다시 그만큼 떨어져 내가 걸었다. 그래야 그의 상태를 봐가며 걸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라시가 쉬는 곳이 아닌데 멈춰 섰다. 지팡이로 쓰는 스틱을 신경질적으로 땅에 박는다. "괜찮아?"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 대신 번역기를 켠다. 이건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거나 뭔가 정확하게 전하고 싶을 때 그가 하는 행동이다.
'제발 그냥 내 속도로 가게 둬. 너는 너의 속도로 가.'
그래도그를 두고 갈 수가 없어 못 알아듣는 척 옆에서 계속 기다렸다.
"나 다음 마을에서 택시 타고 갈 거야. 너무 많이 힘들어."
그는 결국 다음 마을에서 택시를 불렀다. 문 연 카페도 없어서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택시를 기다렸다. 15분 정도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참 애매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뻔히 아픈 거 아는데 같이 못 가는 아쉬움은 그가 훨씬 클 것이기에 괜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어수선한 마음을 달랬다. 예정된 시간에 택시는 왔고 그는 그걸 타고 예약한 Olveiroa의 숙소로 갔다.
그가 13km 정도 걸은 지점에서 택시 타고 떠나자 남은 20km 정도를 볼라쉬하고만 걸었다.
라시와 같이 걸었을 때도 거의 나란히 걷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앞서 가고 그가 약간 뒤처져 걷다가 BAR가 나오면 같이 쉬고, 끼니때가 되면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바르나 레스토랑을 나오면 또 약간 떨어져 걸었다. 그러니 그가 같이 걷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다를 게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멋진 풍경을 같이 보고, 힘든 구간이 오면 서로 격려하며 걸었는데 오늘 오후는 그게 없다. 볼라쉬와는 아직 그렇게 교감을 나누기에는 같이 한 시간이 너무 짧다.
라시는 숙소에서 쉬며 중간중간 왓츠앱으로 본인의 상황을 알리고, 우리의 안부도 물었다.점심 먹으러 들린 바르에서, 걷다가 쉬던 길가에서 우리도 현재 상황을 전했다. 그렇게 그가 없는 또 다른 둘이서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우리가 도착할 때쯤 그가 숙소 앞으로 마중을나왔다.
내일은 피스테라(Fisterra)와 묵시아(Muxía)로 갈라지는 10km 정도까지 같이 걷고 그때 상태를 봐서 결정하겠다고 한다.그러며 번역기를 돌려 내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