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소냐 ~ 우테르가 : 31.5km
이탈리아 동갑나기 친구 프란체스코가 5시부터 짐을 챙겼다. 그가 어제 사귄 헝가리 두 친구(순례길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친구가 됨)와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폴란드 친구 에디타를 포함해 5명이 6시에 함께 출발을 했다. 그런데 나만 빼고 다 헤드랜턴이 있어서 휴대폰 손전등을 안 켜려면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게 부지런히 따라붙어야 했다.
헝가리 젊은 친구가 맨 앞에서 길라잡이를 했는데 지치지도 않고 어찌나 빨리 걷는지 나름 잘 걷는다고 자부했던 난 맨 뒤에서 따라가기 바빴다. 우리는 그 덕분에 남들 하루코스인 팜플로나Pamplona에 3시간 만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아침을 먹고 가자고 했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곧장 다음 마을로 갈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폴란드 친구 에디타는 팜플로나 구경도 하고 이곳에서 자고 낼 출발한다며 우리와 헤어졌다. 결국 남자 넷이서 바르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 친구들은 그게 아침이란다. 난 빵 몇 조각이라도 같이 먹어야 되는데 다들 그렇게 커피만 주문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커피만 마시고 나왔다.
팜플로나 다음 마을인 시스루 메노르Cizur Menor에 도착해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헝가리 친구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더 갈 건데 넌 여기서 잘 거냐?”
어제 프란체스코에게 시스루 메노르에서 내가 잘 거라고 말을 해놔서 그런 질문을 했나 보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려서 여기서 자기에는 시간이 좀 아까웠다. 그렇다고 그들의 걸음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상황에서 함께 가기도 어려웠다.
“난 천천히 갈 테니 먼저 가”
그들이 주먹을 내밀어 부딪치며 “부엔 까미노”하고는 떠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부은 발을 신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서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들어가니 주인 할아버지가 스페인어로 주문을 받는데 도저히 못 알아듣겠어서 멍하니 그냥 서 있었다. 그러자 주방에서 바게트 빵을 가지고 나와 빵을 벌려 보이며 “여기에 치즈와 베이컨을 넣은 음식을 주문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추가로 오렌지 주스까지 시켜서 7유로를 드렸다.
근데 빵 속에 들어간 베이컨(이것을 ‘하몽’이라고 부르고, 유럽에서는 정말 유명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이 너무 짜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 들어간 게 아니라서 처음부터 빵의 절반은 포장을 하고 나머지 반만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 그 반도 많이 남기고 말았다.
이제 다시 혼자 순례길을 걷는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그사이 그치고 다시 불볕더위에 살갗이 따갑다. 오전에 같이 걸을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혼자가 되니 걷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들이 지나갔을 길을 1시간 뒤에 내가 걷고 있다. 그들이 떠날 때 우테르가Uterga까지 간다고 한 거 같아서 오늘 숙박은 우테르가에서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그런데 우테르가의 첫 번째 숙소에 들어가니 그들이 없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자취는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다음 마을까지 갔나 보다. 하지만 난 더 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35km 정도 걸은 거 같은데 여기서 더 걸었다가는 아까 길에서 만난 로마친구처럼 내일 다리를 절면서 걷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로마 친구는 어제 50km를 걸었다는데 오른쪽 무릎이 안 좋다며 힘겹게 길을 걷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전에 순례길을 걸을 때 쓰던 배낭을 메고 말이다.
이곳은 공립 알베르게는 없는 마을이라 사설에 찾아오니 한국인 두 분이 먼저 와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 사람이다. 말이 통하니 이처럼 좋을 수가 없다. 빨래비누도 빌려 쓰고 그동안 어떻게 걸었는지도 얘기 나눴다.
이렇게 까미노에선 만나고 헤어짐이 일상이다. 그러다 또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지만 걷는 스타일이 다 다르니 한번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나기도 한다. 그 한국분들과는 걷는 스타일이 달라 다시 못 만날 것을 예상하며 작별 인사를 미리 나눴다.
프란체스코와 헝가리 두 친구(이때까지도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함), 에디타까지 건강하게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모두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