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커피를 사러 다녀오는 길, 오전 9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바깥은 마치 괌에서 느꼈던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따가운 햇볕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그 숨 막히는 열기가 아직 14층 우리 집 창문턱을 넘지 않았다는 거. 앞 베란다의 낡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바람이 아이스커피 컵 표면에 이슬 같은 물방울을 맺히게 한다. 그 바람은 희미해진 삶의 흔적만큼이나 색을 잃은 마룻바닥을 지나, 삐걱대는 식탁 의자의 다리를 살며시 스치고, 분리수거 가방에 모아놓은 구겨진 투명 페트병들을 토닥인 뒤, 뒷베란다의 먼지 낀 방충망을 통과해 유유히 사라진다. 이렇게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이 차가운 커피와 어우러져 더위를 잠시 잊게 해 준다. 그때, 앞머리에 지름 5cm 정도 되는 헤어롤을 말고, 삼겹살 먹을 때 나오는 쌈무처럼 생긴 동그란 팩을 양 볼에 붙인 아내가 씻고 나왔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그녀 몫의 아이스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기에, 물었다.
“여보, 바람 솔솔 불어오는 곳에서 이렇게 시원한 커피 마시고 있으니까 정말 좋은데…. 우리는 왜 굳이 캠핑하러 가는 걸까?”
“자연을 느끼고 싶어서?”
다른 날과 달리 이른 퇴근을 했다. 차 뒷자리와 트렁크에는 출근길에 실어놓은 캠핑 짐이 가득하다. 아내가 곧바로 떠날 수 있도록 집으로 전화를 걸다가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온도 ‘41’.
‘취소를 했어야 했나.’
우리가 최근 자주 가는 캠핑장은 차로 50분 거리에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사설 캠핑장보다 절반가량 저렴하고, 사이트 크기도 웬만한 텐트 두 동을 칠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처음 갔을 땐 ‘사용하지 않는 반쪽은 세를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넓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인데, 이제는 우리가 더 자주 이용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조건 좋은 캠핑장이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기다려주는 건 아니다. 원하는 날짜에 예약하기 위해선, 정성은 기본, 약간의 '운빨'도 따라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주로 가는 금·토 1박은 토·일 1박보다 경쟁이 덜 치열해, 가물에 콩 나듯 빈자리가 뜬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아내는 “취소해”라고 말했다.
"이번만 가고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예약 안 할 거야."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 이번 캠핑을 강행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외부온도 40도가 넘는 날, 우리는 자연을 '느끼러' 가고 있었다.
“이 불볕더위에 너희만 쪄 죽게 놔둘 수 없지.”
캠핑장을 소개해 준 지인이 우리가 캠핑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저녁에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집을 나설 때는 우리 부부 먹을 양만 챙겨 나왔기에, 급히 목적지를 캠핑장 근처 마트로 바꿨다. 고기와 즉석밥, 쌈 채소 등을 넉넉하게 사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 담장을 두른 나무들 덕분에 그늘이 져, 뙤약볕 아래서 사이트를 설치하는 고역은 피할 수 있었다. 누군가 쉘터(바닥과 벽이 막혀 있어 방수와 방풍에 효과적인 일반 텐트와 다르게 사방이 메시로 되어 있어 통기성은 좋으나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사용하기에 불편함)의 폴대를 조립하면, 다른 한 사람은 본체를 펼친다. 내가 야전침대(캠핑용 코트, cot) 프레임을 조립하고 천을 펼치면, 아내는 천을 팽팽히 당겨 조립한 프레임에 끼워 넣는다. 아내가 롤 테이블을 꺼내 조립하고 있을 땐, 나는 전등을 걸 스탠드를 세운다.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으니, 모든 설치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가스버너 위에 캠핑 요리의 만능판이라 불리는 그리들(Griddle)을 올리고 불을 켠다. 불이 오르고 철판이 뜨거워질 때쯤, 그리들 가장자리에 쫄깃한 식감이 좋아 자주 찾는 껍질 붙은 돼지고기 앞다릿살을 먼저 올린다. 가운데엔, 시큼해서 그대로는 손이 잘 가지 않던 신김치를 얹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고기에서 나온 기름이 김치에 스며들고, 철판 위에서 김치는 튀기듯 볶아지며 특유의 깊은 향을 뿜어낸다. 그 사이 아내는 쌈 채소를 씻고, 즉석밥을 데워 온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지인 부부가 도착해 테이블 맞은편에 가져온 접이식 의자를 펼쳐 앉는다. 비슷한 시기에 발령받았던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25년째 이어오고 있다. 오늘 방문한 두 사람은 그 모임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는데 이렇게 캠핑장에서 종종 만나 저녁을 함께한다. 저녁 먹고 다시 운전해 돌아가야 하는 지인 부부는 음료수를 마시고, 우리 부부는 500ml짜리 맥주캔 하나를 반씩 나눠 마신다. 매너 타임이 시작되는 밤 10시까지, 맥주와 음료수를 아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지인 부부는 조용히 자리를 털고 돌아간다.
이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더위에 대비해 아내가 사들인, 내 얼굴보다 조금 큰 씨링 팬(Ceiling Fan)이 쉘터 천장에서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간다. 쉘터 양쪽에 놓인 야전침대 한쪽에, 양치와 고양이 세수만 겨우 마친 아내가 먼저 눕는다. 나는 꿉꿉한 상태로는 도저히 잘 수가 없어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반대편 침대에 몸을 누인다. 스킨 없이 메시로만 된 쉘터의 양쪽 면을 따라 간간이 바람이 스친다. 야전침대가 푹신하진 않아 밤새 몇 번을 뒤척이고 나면, 어느새 큰아들을 깨우라는 6시 알람이 울린다. 주말 아침 아르바이트를 가는 큰아들을 깨우는 일은 내 몫이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그로부터 두 시간쯤 더 지나 일어난다. 우리는 어제의 역순으로 짐을 정리해 차에 싣는다. 이런 패턴이, 우리가 요즘 보내는 캠핑이다. 아주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 밥해서 먹고, 씻고 자는 것―집에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굳이 캠핑하려는 걸까? 아니 아내는 왜 이런 남편을 따라나서는 걸까?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평소랑 다를 게 없는데, 왜 캠핑하려고 해?”
“캠핑을 가면 눈앞에 닥친 일만 하게 되잖아. 그러니까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돼서 좋아.”
“그래도 불편한 게 많잖아. 처음엔 씻는 거나 화장실 불편해서 싫어했잖아?”
“그땐 내가 내 몸만 챙기는 게 아니었잖아. 애들 데리고 다니면 먹이고 씻기고 화장실까지 챙겨야 했으니까…. 그게 힘들어 싫어했지.”
우리가 가는 캠핑장은, 텐트 위로 별빛이 쏟아지고, 나무 사이로 바람이 속삭이며 지나가는 그런 곳은 아니다. 조용히 책을 읽다가, 어느새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에 가슴이 설레는 그런 풍경도 절대 바랄 수 없다. 다만, 요즘 같은 날씨만 아니라면 타닥타닥 오렌지빛 불꽃을 피우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다, 하염없이 생각을 비워내는 '불멍' 정도의 낭만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을 잊기 위해 떠난다.
이 글을 쓰며 틈틈이 마시던 아이스커피가 바닥을 보인다.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는 아내의 컵도, 바닥엔 얼음 몇 조각만 굴러다닌다. 다시 돌아온 일상이다. 그런데, 이 일상이 캠핑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귀하게 느껴졌을까. 어느새 오른손이 마우스를 끌어당겨 바탕화면에 저장해 놓은 캠핑장 예약사이트를 클릭한다, 아내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