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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Oct 21. 2018

거친 몽골을 경험하다

-장규일

40년 내 온몸을 지배하던 교원으로 나의 삶은 끝났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얼마간의 방황이 있었다. 그러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거치고 오랜 바람이었던 몽골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계획하면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주위에 자랑을 흘리고 다닌 터라 나름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고 있었다. 몽골은 두 번의 경험이 있고 어쩌면 아무런 볼거리가 없는 몽골이 자꾸 끌리는 이유를 이번에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몽골을 30회 이상 넘나 든 친구의 도움과 대학과 사회 초년 시절 죽이 맞았던 친구 몇 명, 퇴직하고 새롭게 만난 친구, 후배 몇 명, 또 여행을 즐기는 낯선 사람들까지 우리는 20명이라는 적지 않은 일행으로 18박 19일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여행지는 몽골의 중원을 지나 서부 호수지역과 서북쪽의 타왕복드 지역으로 3,000 km가 넘는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몽골의 바람을 느끼다    

우리가 몽골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비를 몰고 온 행운의 손님이라고 반겨줬다. 첫날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자이승기념관과 이태준기념관을 둘러보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톨강을 보면서 울란바토르(수도)의 변화를 실감하였다.

다음 날 가이드와 기사 5명이 합류해 델리카 5대에 나누어 타고 울란바토르를 떠나 첫 번째 목적지인 엘승타사이하르로 떠났다. 룽솜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가장 깨끗한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몽골 중부의 너른 평원을 내달렸다.

포타니 빙하 앞에서의 휴식


이름 모를 꽃들이 평원에 일렁인다. 몽골의 꽃들은 어쩌다 이렇게 수억으로 모여 피어 있는 것일까? 바람이 불어 순간 수억의 빛깔들이 일렁인다. 온갖 꽃들이 어울려 있어도 좋지만, 어딘가에는 라벤다, 유채꽃, 솜다리 꽃, 물매화가 보랏빛으로 노란빛으로 또는 하얀빛으로 숲을 이루어 일렁거리는 것을 보면서 일행은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저 옛날 몽골제국의 물류센터가 있던 허르허린은 옛날의 영화는 사라지고 후에 세워진 에르덴 죠 히드(사원)와 거북바위, 남근석 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민족에 쌓일 것이 없었나 보다. 그저 여기저기 흔적들을 기억할 뿐이다. 

차강노르 가는 길, 비포장도로에 내린 비로 뻘밭을 만들어 차들이 눈길에 미끄러지듯 요동을 친다. 어렵게 어렵게 허르거터거(분화구)와 화산지대의 동굴과 오름을 만났다. 몽골 중원의 아름다운 호수 차강노르에 비가 내렸다. 호수로 부는 바람에 비가 날리며 거대한 호수를 일렁이게 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     

몽골 여행에서는 길을 찾는 경우가 절반이고 길을 잃는 경우가 절반이라고 한다. 어쩌면 수 없는 길 찾기에서 몽골이 가슴 깊이 새겨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르노르로 가는 길은 보라색 야생화와 하얀 이름 모를 꽃들이 그 끝을 드러내지 않고 가는 길을 멈추게 했다. 이곳에서 몽골 방송국의 프리랜서와 우리 일행은 몽골을 여행하는 외국인의 생각을 묻는 인터뷰를 했다. 몽골을 찾은 이유를 묻는다면 “몽골의 기운과 몽골의 바람을 느끼고 싶어 왔다.”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몇 개의 언덕을 넘자 사막과 거대한 산맥을 끼고 여러 빛깔의 물빛을 간직한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호수 입구의 큰 돌무지무덤은 청동기 시대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한다. 자브항 아이막의 하르노르(검은 호수)는 2,000m 높이에 위치한 호수로 '물속에 말풀이 많아 검게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간의 피로와 거친 여행의 잠시 여유를 갖고자 하르노르에 2박 3일을 머물기로 했다. 한 나절 사막 호수에서의 샌드 보딩과 수영을 함께 하고는 나머지 일정은 자유롭게 둘러보기로 했다.

첫날 일행 중 몇몇은 게르 뒤쪽의 꽤나 높은 산을 오르기로 했다. 너른 들판을 지나서 능선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 일행은 시간 반쯤 지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겠거니 하고 올려다보면 봉우리는 저만치 물러나 있다. 30분쯤 헐떡이며 올라가 보면 또 다른 봉우리가 저 앞에 있다. 그러기를 서너 번 우리는 어쩌면 지나온 길 보다도 더 걸어야 할 길에서 서서히 욕심을 내려놓고 저 높은 능선을 보며 옆으로 옆으로 돌아 내려왔다. 이런 일들은 몽골을 여행하면서 계속되었다. 솜(군청정도의 행정구역)에서 솜으로 이동하면서 저 너른 평원을 건너면, 저 고개를 넘으면 하는 바람은 몇 개의 평원과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거친 능선을 말 타고 이동하는 장면


몽골의 길은 끝없어서 좋았다. 하루 종일 달려서 왔건만 아침에는 또 다른 길이 있고 그곳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저마다 몽골의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몽골의 길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너른 들판에 말달리던 어제의 용사들이 이제는 프르공, 델리카를 몰고 초원을 달린다. 그들은 거침없이 내달리고 길을 만들어 달린다. 평원에 새긴 아름다운 선들이 흙먼지와 함께 일어서며 그들 조상들이 돌에 그림을 새기듯 평원을 조각한다. 몽골의 길에서 몽골을 읽어내려 노력해 본다. 누군가의 말처럼 길을 모르면 물어서 갈 일이고 길을 잃으면 헤매면 되는 것이다.


하르노르는 사막 한가운데의 호수다. 다음날 나와 몇몇은 하르노르를 끼고 발달한 거대한 사구 트레킹을 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사구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몸으로 느끼며 걸었다. 얼마쯤 걷다가 쓰러지고 뒹굴며 어린아이가 되었다. 가지고 갔던 소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로 사막 건너 에머랄드빛 호수를 보며 자유를 만끽했다.

40년 교직에 남겨놓은 것도 없이 왜 그리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했는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의 고독과 번민의 날들을 감내하면서 그렇게 용기 내지 못한 내가 아쉬웠다.

 

나는 나의 소중한 인생을 제대로 관리 못한 우매한 선생이었다.     

뜨거움일까? 

욕망일까?

우리는 저녁이면 모여 앉아 보드카를 마시곤 했다.

얼큰해지면 눈부신 여행토크가 시작된다. 모두가 그렇게 인생을 즐기면서 담대하게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면 좋으련만...     



거친 몽골에서 몽골의 기운을 느끼다

<빈센트암과 모하르트 강을 찾아가는 길>

아침부터 운전기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지금까지도 낯선 길에선 수시로 모여 의논하는 모습을 보아온 바다. 이 날의 목적지인 빈센트암과 모하르트 강은 여행을 리드하고 있는 김선생이 욕심내어 잡은 일정으로 현지 가이드나 베테랑 운전기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스라 현지인의 설명만을 듣고 떠났다. 험한 산등성이 몇 개를 넘자 저 멀리 산꼭대기로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운 빈센트암이 보인다. 다시 산을 내려가 델리카 다섯 대로 산을 오르는 광경은 두려움 속에서도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2,800m 산 정상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리의 개선문에서도 느낄 수 없는 신비로움과 장엄함으로 일행을 막아섰다. 운전기사들도 처음 본 빈센트암 앞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몽골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은 아마도 구름일 것이다.

몽골의 여름은 거대한 평원에 하늘을 온몸으로 열어주지 않는다. 

시간 시간 우리는 다른 구름 아래를 달린다.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살아나고 평원은 은밀하게 색들을 바꾸고 있다.

때로는 양털구름으로 때로는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것 같이 달려든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느 한 구석에는 비가 오고 있을 터였다. 


모하로트강 가는 길의 사막호수


빈센트암을 지나 산을 내려오면서 멀리 사막 호수가 보인다 했다. 사막 호수라니? 산의 중간쯤에서 멀리 작은 산 봉우리 사이 계곡으로 누런 물결이 일렁인다. 모래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사막과 모래 산을 돌고 돌아 차량 접근 금지 구역에 다 달았다. 우리는 내려 조심스럽게 계곡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모하르트 강 상류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쯤 올라가니 멀리 사구 언덕이 보였다. 일행 몇몇과 조심스럽게 사구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걸으니 높이가 100m 남짓 거대한 모래산이 마치 사력댐처럼 버티고 있었다. 우리가 찾는 것은 모하르트 강의 ‘원천수’였다. 거대한 모래산 아래로 모래들이 조금씩 흘러내리면서 점점 물길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경탄했고 한 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몽골 오지 탐험 18박 19일, 오늘 하루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몽골인들도 몇 명 경험하지 못한 모하르트 발원지에서 나는 목이 메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곳을 일정에 넣어 준 김선생에 감사한다.


이제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타왕복드로 가기 위해 울기로 향했다. 몽골의 서부는 평원과 높은 산, 그리고 끝없이 길게 이어진 사막, 여기저기 보이는 크고 작은 호수들로 거칠지만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가면서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하르가스노르에 들렸다. 염호(소금 호수)로 물고기가 많이 서식한다고 했다. 과거 공산주의 시절 당간부들이 쓰던 휴양소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허름하고 볼품없는 여행자 캠프에서 하루 묵고 일곱 가지 약수가 나온다는 곳에서 약수를 받았다.     



우리의 목적지 타왕복드     

울기는 바양울기 아이막의 중심지로 알타이 타왕복드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국내선 공항이 있고 주민의 대부분은 카자흐스탄 부족으로 이슬람교를 믿고 카자흐 말을 사용한다.

며칠 만에 목욕을 하고 앞으로 있을 험난한 여정에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부터는 지리와 유적을 안내할 가이드(울기의 행정공무원)와 요리사 두 명이 프루공(러시아제 봉고)과 함께 합류했다.


타왕복드는 멀고 험난했다. 멀리 3,200m 높이의 설산인 쳉겔하이르항올에는 군데군데 빙하가 보였다. 다양노르를 지나고 호르강 노르까지 쉼 없이 달렸다. 그러다 결국에는 차에 문제가 생겼다. 거친 계곡과 산, 개울을 말 달리듯 달리는 그들 앞에 차가 버티지 못하고 서 버리기는 일쑤였다. 

일행을 다른 차에 옮기고 목적지인 원주민 유목민 게르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경이었다. 다양노르 근처의 한 카자흐스탄 부족의 게르에서 유목민과 함께 일행 중 남자 14명이 함께 자게 되었다. 자다 깨어 게르 밖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별들이 캄캄한 평원에 그득하다. 내 발 밑의 몇 평만을 남겨 놓은 채로 별들이 가득하다.

고요 속에서 고요가 깊어지듯, 어둠 속에서 어둠이 더욱 깊어지길 바랬다.

나는 그곳에서 몽골의 전통악기인 '모린호르'의 굵고 묵직한 울림을 생각하고 있었다.    


엘승타사이하르 사막에서의 낙타 여행


드디어 타왕복드에 도착했다. 멀리 설산과 빙하가 보인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포타니 빙하를 위해 채비를 했다. 그런데 20명 인원에 필요한 말이 16 필 밖에 준비가 안 되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나와 친구 두 명은 걸어가다 말이 구해지면 합류하기로 했다. 한 시간 이상 걸었지만 말은 오지 않아 포타니방하 뒤쪽으로 접근하기로 하고 걸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언덕에 오르면 또 다른 언덕이 우리를 지치게 했다. 우리는 몇 개의 언덕을 넘어 포타니 빙하의 뒤편 만년설과 아름다운 빙하로 대신하고 포기했다. 돌아서 내려오는 3시간의 트레킹은 천상의 화원이라 할 만큼 지천에 깔린 야생화와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그간의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예정 코스를 변경해 카자흐스탄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시베트하이르항올을 넘어가기로 했다. 그야말로 차로 산을 등반하는 격이었다. 운전기사는 연신 창밖으로 목을 내밀고 차바퀴가 돌부리를 제대로 넘어가는지를 확인하였다. 30분을 오르니 너른 고원이 보였다. 아, 이곳에도 양 떼와 염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암각화 군락을 두 군데나 안내받았다. 많은 이들이 이 암각화를 보려 이곳을 방문하지만 험한 길과 아는 이가 드물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곳의 암각화는 세월을 뛰어 넘어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고대 그들의 삶이 투영된 그림 조각에서 이렇게 험한 산악이 사냥이 중심이었던 이들에게는 천혜의 보금 자리였겠구나 생각을 했다.


아침 초원을 말로 달리면서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는 말을 떠올렸다.      

떠나오니 그리운 곳

볼 빨간 아이들과 낙천적인 어른들

초원과 호수, 사막 그리고 별들이 반짝거리는 곳

구름과 바람이 평원을 메우고

목동이 말을 달리는 곳

그래도 잘 살았다고 위로받고 온 곳이기에

지금 이 순간

가슴으로 손끝으로 뜨거움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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