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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Dec 18. 2018

학교 역동의 조건, ‘실험과 상상’

-경기도교육연구원장 이수광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별표) 부분에 대해 글 맨 아래에 주석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수광 경기도교육연구원장 ⓒ기호일보



‘실험’과 ‘상상’이 학교의 구성적 특성이 되어야


삶의 맥락에서 학교를 보자. 학교는 학생들에게 일상의 장소이자 삶의 통로다. 대개 학생들은 일정 시간 학교에 다니면서 또래를 만나고, 비슷한 학습활동을 반복하고, 몰입과 일탈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기 삶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실존의 의미를 찾으려는 물음을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학교는 삶의 집적 공간이자 의미 형성의 장이다. ‘학교가 어떤 구성적 특성을 갖추어야하는가’의 질문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학교가 실존 의미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이념적 배경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업적주의(meritocracy)나 시험주의(testocracy)을 넘어서서 존엄주의(dignocracy)를 앞세울 필요가 있다. 즉 모든 학생의 존엄이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는 교육체제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고유성과 독특성이 발현될 수 있는 ‘다채로운 배움터’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험’과 ‘상상’이 학교의 구성적 특성이 되어야 한다. 즉 학생들의 다양한 실험과 상상을 지지·격려하고 이를 촉진할 수 있는 운영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실험’이란 새로운 관점, 형식, 방법 등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조작적 실험은 물론 사유의 실험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학교가 ‘실험의 장’의 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재의 체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체계를 구상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즉 고정된 패턴과 규칙을 탈피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 사상(事象)이나 사물을 관찰하고, 다양한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구안·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학교 삶의 과정에서 다양한 질문과 직면하게 된다. 순간순간 인간 존재에 대한 보편적 의미를 사유하고 성찰해야 하는 기회에 맞닥뜨린다. 또한 삶의 본질과 가치를 되짚어 보아야 할 장면에도 노출된다. 따라서 존재론적 질문이 활발하게 소통되고 일상의 구조적 맥락에 대한 사고실험이 허용되는 풍토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사고실험이 허용되는 풍토에서는 사고의 외연이 확장되고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양식에 대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초월의 힘’을 내재한다. 이런 점에서 실험(實驗)은 창의성을 촉발하는데 필요한 극성(polarities)이자 입체적 사유 구조의 기반이다. 학교가 ‘실험 장’으로 전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상’이란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사물과 사태에 대해 감정이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획, 연출, 표현, 창작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상상 속에서 문제적 인물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즉 공감적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 또한 학생들은 문제적 상황이나 ‘예외적 사건’도 접하게 된다. 이를 통해서는 사건을 맥락적으로 파악하는 ‘상황 감수성’, 입체적 해석능력,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해결력 등이 촉발된다. 그리고 특정 주제를 연출·표현하는 창작 과정에서는 핵심 이슈(core issue) 파악 능력이나 이슈 전달 기제에 대한 선택 능력이 신장된다. 공동창작 과정에서는 참여자들 간의 대화가 중요한 만큼 관계능력이 함양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상상은 인간적 질감의 확장 기술이자 특정 주제나 사물·사태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 기술이다.     




학교는 '실험과 상상'의 삶터


학교가 ‘실험과 상상의 삶터’로 작동하는 경우, 학생들은 집성(集成)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고유성·독특성을 열정적으로 발현하고, 일상에서 접하는 사건이나 사태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게 된다. 즉 질문의 연쇄는 확장되고 열정은 증폭된다. 이런 점에서 ‘실험’과 ‘상상’이 서로 나선형처럼 겹쳐지는 학교교육과정의 원리를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 즉 삶과의 연계성을 높인 교과수업설계, 초월적 사유를 촉발하는 주제 수업, ‘일상의 구조성’과 ‘인식의 식민성’을 확인하기 위한 프로젝트 수업, 존재 물음을 자극하는 참여활동, 노동의 일상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진로체험활동, 다양한 취향과 특성을 고려한 체험활동, 나아가 학생의 자치와 자율을 폭넓게 보장하는 학교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즉 학교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 기회’, ‘윤리적 이해력 확장 기회’, ‘자기 효능감 확인 기회’, ‘보람된 것을 궁리하는 기회’, ‘시민으로서의 참여 기회’, ‘자신의 특성을 다중에게 조회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제도적으로 조직화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험과 상상의 원리가 적용된 학교교육과정은 어떤 목표를 상정하는가? 최종 심급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고의 야성(野性)’을 키우는 일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하고 정답으로 제시되는 것들과 불화를 빚는 사유 방식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야성’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통찰하고,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의 밑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인간적 질감’이다. 인간적 특질을 실감할 수 있는 요소, 즉 올바른 태도와 부드러운 심성은 인간적 위엄의 근거이자 그것 자체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인간적 질감의 확장은 학교교육의 핵심 목표가 된다(되어야 한다). 


유발 하라리(2018)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심대한 불확실성이 일시적 결함이 아니라 항구적인 특성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 필요할 것이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은 내가 주장하는 ‘사고의 야성’, ‘인간적 질감’과 맞닿는다.*     




학교 역동성의 조건은 실험과 상상


대개 사람들의 일상은 실험과 상상으로 구성된다.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해진다. 사람들은 이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별난 것을 생각하고’, ‘뒤집어 보고’. ‘새로운 것을 궁리하고’, ‘더 재미있게 만들려고’ 갖가지 애를 쓴다. 이 애씀의 과정이 바로 실험과 상상이다. 이 과정이 있기에 일상의 다이나믹스가 생기는 것이고, 이 다이나믹스가 바로 삶의 재미이자 기쁨의 원천이 된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 학교는 학생들의 삶의 공간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재미와 일상적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교육이상(理想)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교의 역동이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답은 바로 실험과 상상에 있다. 실험과 상상이 나선형처럼 겹쳐질 때, 각성의 희열과 삶의 재미가 더 생생해진다. 그래야 학교 다닐 맛이 나는 것이다.     



*각주

유발 하라리(2018).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39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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