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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Feb 13. 2017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구멍가게와 쿠키 두 조각.


구멍가게에선 대낮부터 막걸리 같은 걸 팔았다. 초등학교 앞에 있는 구멍가게치고 어울리지 않는 '주막'에 가까운 가게의 분위기에, 등하교 시간을 빼곤 동네 나이 지긋한 할배들 뿐이었다. 덜 자란 짧은 다리여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가게까지 다녀오기란 숨이 턱 막히는 일이었다.



불량식품 몇 개 꼭 주머니에 챙겨오는 것이 아침의 일과였는데, 고작 네 평이나 됨직한 공간에 마구잡이로 쌓인 물건들 사이로는 쥐도 가끔 보였으나 모른 체 했다. 진열대 뒤 유통기한 지난 봉지빵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과자는 가끔 열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와글와글한 시간에 정신없는 중에도 할머니는 계산 한 번 틀린 적이 없다. 셈이 빠른 양반이었다.


가게 앞엔 방에서나 쓸 법한 장판으로 만든 조악한 평상이 있었고 할매는 더운 날에 그 위에서 부채질을 했으나,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가게 안엔 선풍기 하나 없었다. 지독하게 구두쇠인 양반이 결국, 그 해 가게 옆 새로 자신의 집을 지었다. 눈깔사탕 팔아 번 것 치고는 괜찮은 벌이가 아닌가 싶었다. 기껏 쉰 명이 안 되는 분교가 닫는다는 소리를 알아듣을만큼 머리가 크기 전까지, 구멍가게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더러 품었다.




어느 날은 배가 고파 라면을 먹어야 했다. 방과 후 활동이 있어 학생 전부 돌아간 시간, 구멍가게로 갔다. 퀴퀴한 오징어 굽는 냄새, 막걸리와 소주병을 몇 개 두고 얼큰하게 취한 벌겋게 뜬 아저씨들이 있다. 주머니에 든 용돈이 천원이어서 라면을 끓여주시면 얼마냐 물었다. 이천 원. 먹고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에 버스비를 포기하고 라면 한 그릇을 시켰다.


사백 오십 원 짜리 라면이 어떻게 네 배가 넘도록 가격이 올라가느냐, 묻고 싶던 것은 많았자만 어린 나이에 술 취한 아저씨들이 고약해질까 겁이 났다.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은 공짜였는데. 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가보다. 라면은 물이 넘치도록 많아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달걀이 들어갔구나, 그래서 가격이 비싼걸까. 그리고 그 맛없는 라면을 다시 먹은 적은 없었다.



도둑질에 대한 단상


꼭 그 나이 때의 사내놈들이란 여물지도 않은 알량한 베짱이 있어서 시덥잖은 것에 목숨을 걸었다. 이를테면 하지 말라는 일들이라던가. 주머니 두둑하고 배포 큰 아이야 오십 원 짜리 불량식품 몇 개 집는 것 쉬워도, 나머지는 그렇지 않기에 적은 용돈으로 꼭 하나를 골라야 하는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어느 날은 함께 쫀듸기 따위를 난로에 굽다 안에 있는 호박 꿀이 새어나와 버려야 했는데, 한 꼬마가 숨겨둔 한 봉지를 더 꺼내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거 뽀렸다. 낯설지 않은 은어보다 훔쳤다는 금기에 흠칫 한 사내녀석들은 이제 어쩌자고 조악한 작전 따위를 꾸렸다. 네가 망을 보고, 네가 주머니에 넣어.



지금 생각하면 분명 한참이나 어설프고 눈치챘을만한 일임에도 모르는 척, 할머니는 꾸짖질 않았다. 직접 훔치진 않았지만 은연 중에 동참한 나도 역시 죄책감이라는 게 있어 금방 그 무리에서 빠졌다. 주인이 봐 주고 있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꼬리가 길어도 너무 길어 가게 안에 두고 오기까지 할 때 쯤에야 한 녀석이 잡히고 말았다. 등교를 하다 구멍가게를 보니 녀석이 울상이 되어 손을 번쩍 들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심경은 복잡해졌다.




어쩌다 쉬는 날,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 몇몇 학생이 모여 준비하는 중에 구멍가게는 닫혀 있었다. 마침 병원에 다녀오시는 듯 할머니가 평상에 앉은 내 눈치를 살피는 건 열쇠가 전기검침기 위에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서 먼 산만 봤다.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손 댄 적 없이.




길고 긴 열차 안엔 쿠키 한 박스를 통째로 놓고 먹는 아저씨가 있었다. 안에는 잼이 들어있는 듯 붉었고, 기차 안에서 고작 라면 밖에 먹을 것이 없던 난 왜 그리도 그 쿠키가 탐났는지 모르겠다. 두 시간 쯤 걸쳐 밥과 라면 등, 이것저것 입에 밀어넣던 아저씨는 금세 곯아 떨어지고 나는 모르는 척 테이블에 그대로 놓인 쿠키 두 조각을 먹었다. 아 그 달콤함이란.


금기의 맛은 이렇다. 고작 쿠키 두 조각이 무슨 대수냐 여길 수 있겠어도, 쿠키를 집어들던 그 짧은 순간 많은 갈등이 있었다. 과연 이래도 될까 싶은, 죄의식의 맛. 그리고 지금 역시도 속이 불편하다. 쿠키는 맛있었고, 상하지도 않았으니 체하지도 않겠지만 언저리에 남는 양심의 책망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은 이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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