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Jan 30. 2017

그 날의 돈까스

바삭한 호의 앞에서 우리는.



특선 돈까스 5500원


입간판에 분필로 쓰여진 투박한 글씨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듯, 구구절절하게 긴 간판도 마음에 들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오래도록 장사를 열게 된 이십 년 전통의-.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격 때문이었다. 집에서 기름 냄새가 나는 것은 썩 좋지 않은데다 맛있게 튀길 자신도 없었으니 누가 뭐라한들 오늘은 이대로 늘 지나치던 골목의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다.


심드렁한 주인이 앉아 티비나 볼 법하다고 여겼었는데, 의외로 안은 소란했다. 하나, 둘. 또는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홀로 온 치들은 라면이나 오뎅탕 따위를 시켜 앉아 생맥주를 벌컥이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티비에서는 축구 경기를 중계해준다. 어떤 테이블은 옛 경양식집에서 쓰일 법한 통 가죽 소파와 낮은 칸막이가 되어 있다. 조악한 듯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에 마음을 휘둘리다 정신을 챙겼다. 주인 아주머니는 앉으라며 말을 걸어왔다.




저녁엔 판매하지 않아요


당혹스러워 하는 낌새를 알았는지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 가격은 점심 특선이었던가. 돈까스 하나를 달라는 말에 중년의 아주머니는 메뉴 확인을 하며 세 배 쯤 되는 가격을 부르는데 미처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내가 5500원 앞에 쓰여진 1을 미처 보지 못했나. 그 표정을 보고는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감감 소식이 없다. 공을 몰고 골대 앞만 가면 비명을 지르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다들 어찌하여 양은냄비 째 나오는 라면 한 그릇을 먹고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다 그만둔다.


홀로 산다는 건, 주머니가 여의치 않아도 그 몫을 내일로 미룰 멍청한 선택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맛있게 먹고 내일 굶으면 되니까. 그러나 이 가격은 아니다 싶어 다시 옷을 챙겨 입고 나갈 결심을 하는데, 아주머니는 잘 튀겨진 돈까스 한 접시를 들고 나왔다. 비밀이라는 손짓은 고스란히 돈까스 옆 작게 올려진 밥과 같았다고나 할까.




맥주까지 시키면 과해보이려나. 돈이 있는 녀석이었다던 오해로 이 호의를 망가뜨리긴 싫었지만, 노르스름한 황갈색의 고깃덩이는 생각할 새도 없이 손부터 올리게 만들었다. 다시 메뉴판을 받아들고서 꽤 가격이 나가는 흑맥주 한 잔을 고심하는데 스스로 혼잣말을 했는지 의심하게 할 만큼 그녀는 다시 말을 걸었다.


우리집은 기네스 병보다 생맥주가 저렴해요. 네, 그럼 그걸로 한 잔. 얼굴이 아마 붉어졌을 것이다.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란 그런 것이어서 이 지출이 내게 얼마나 무리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먹던 오뎅탕을 반 쯤 남기고 나간 무리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듯한 사람들이 나가고 나니, 식당은 금세 홀로 온 사람들로 조용해졌다. 주변을 생각할 새도 없이 오랜만에 근사한 것들에 홀려 맥주까지 금세 비운다.




폴란드 맥주는 어때요?


한 잔이 딱 더 떠올랐지만 이미 같은 맥주에 값을 치를만큼 돈이 되지 않았다. 값은 반이지만, 탄산이 적고 상쾌하다는 말에 추천을 받아들인다. 과연 그렇구나. 이렇게 식사와 술을 즐길 수 있게만 해준다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주방에서 남자가 나왔다.


축구는 벌써 끝난건가. 묵직하게 울리는 뱃고동 같은 목소리에 술이 번쩍 깬다. 경기가 끝나고 하이라이트만 보여주는 걸 유심히 살피는 남자는 요리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셰프의 복장 그대로 흰 주방장의 옷에 길쭉한 모자까지 썼으니. 이런 뒷골목의 오래 된 선술집에서 만난 마주한 그는 정말 현실감이 없었다.


나를 힐끗 보고 주방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며, 그는 과일을 채 썬 작은 접시를 내 테이블에 놓았다. 학생이에요? 이건 서비스. 걱정 말아요, 남은 거니까. 그 특선 돈까스는 맛이 어떠냐며 사내는 말을 걸었다. 글쎄, 본인이 더 잘 알텐데. 낮엔 일을 하니 못 오고, 저녁엔 팔지 않으니 오늘 이걸로 끝이겠구나 싶은 맛이네요. 그의 묵직한 목소리에 위압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술이 올라 느낌이 덜하다. 친절한 아주머니가 솜씨 좋게 마음도 알아주는 이 가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한다.




종종 그 쪽이랑 비슷한 사람들이 와요.


내 딸이랑 별 차이도 나지 않을 또래인데(실례는 아니죠?), 특선 메뉴 위에 큼지막하게 써진 '점심'이라는 글자를 못 보는 사람들. 맛있게 튀긴 돈까스 하나 먹고 싶은데 주머니는 가벼우니까요. 걱정 말고 다시 오면 또 해주겠다고, 이렇게 말은 하는데 꼭 그걸로 끝이더라고. 왜 그럴까요. 이 호의가 젊은이들한텐 부담스러운걸까.


아마 아닐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와요.' 그 호의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온 가게 앞에서 여전히 조금은 후덥지근한 늦여름의 바람을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가게에 다시 갈 수가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살던 골목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