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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05. 2016

나의 살던 골목은

뒤늦은 자취 일기.


차가운 바람을 피할 건물과 급할 때 찾을 공중 화장실이 어디쯤인지 알고 있다. 나는 이 골목을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동안 이 곳에서 살았으니까. 어느 골목에 고양이가 자주 출몰하는지, 버릴 곳이 없어 난감한 껌 종이를 어디다가 버릴 수 있는지, 갑자기 늦춰진 약속에 잠시 앉아 시간 보낼 공원이 어딘지.


전국에서 가장 덥다고 매번 놀림받는 이 도시에서 한 일 년, 살아봤다. 월세를 빼고 남는 몇 푼으로 돈을 아껴보겠다고 즐길거리를 포기할만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대안을 찾아다녔던 것도 같다. 안경 전문점에서 카드를 만들면 거기 딸린 카페에서 하루 한 잔을 공짜로 준다거나, 문 닫기 15분 전에 남은 빵을 떨이하는 빵집에서 '가장 신선한'떨이를 사 오곤 하는 것.



기억에 남는 것은 달걀.


하루가 멀다 하고 쏘다니는 아들이 해외에 나가도 엄마가 걱정 없는 이유는 기가 막혔다. 달걀만 있으면 밥 먹을 수 있는 놈이니까. 그 말은 너무 했지만 몸 어딘가가 닭알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게 먹었다. 달걀 한 판이 얼마나 거대한 양이었는지 알기 전까지.


다 먹기도 힘든 달걀 한 판이 30개라는 것. 그럼 10구짜리 작은 묶음을 사면 될 일인데 난 뭐가 그리도 무식했는지, 식비를 줄이겠다며 열심히 가격을 비교했다. 유정란 따위는 논외로 두는 것에서 이미 건강은 뒷전이었지만 오백 원을 아끼기 위해 할인하는 마트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대개 보통일이라고 생각하는, 사소하게 여기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엄마는 보통이 아니었다.



쓰레기봉투를 내놓으며 사람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쓰레기들을 배출하고 사는지 깨닫는다. 생각보다 비싼 봉투 가격에 최대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쪽으로 스타일을 바꾸긴 했다. 그렇다고 하여 불분명한 위치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봉투에 지정된 용량선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부분을 테이프로 감는 행위 등이 여전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딱히 시리얼이나 레토르트 식품을 먹고 싶진 않았다. 배달은 더더욱 아니고. 전단지가 끊임없이 문에 붙어 떼길 몇 번, 차라리 집에 없는 척 현관문 한 편을 포기하고 내어주는 것이 전단지가 덜 붙는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야 하는 건물에 어쩜 매일 붙었는지 모를 일.


배운 게 도둑질이라, 여행하며 얻어먹는 음식들에 답례를 하겠답시고 나선 경험은 꽤 좋았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감각으로 한 요리들은 제법 모양새가 좋았으니. 그래도 꼬박 요리를 해 먹는 일은 귀찮은 것이었다.


아침이면 비질을 하는 구멍가게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 먹으려 들어가면, 할아버지는 작은 손주를 안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돈은 그쪽에 놓고 가세요.' 그리고 어느새 커버린 손주가 골목을 뛰어다닌다. 골목은 이제 그렇게 되었다.



외국인들과 고양이가 많이 사는 골목에 대한 기억은 대개 이런 종류였다. 배달음식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파란 눈의 남자가 왜 이 곳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 무뚝뚝한 사투리를 뱉으며 고양이의 먹이를 챙겨주는 아주머니. 심하게 비싼 값의 자동차가 한 번도 움직이지 못한 채 비와 먼지, 낙엽을 맞으며 비탈길에 서 있는 것 따위가. 그래, 기억이란 이런 것이 남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전거를 끌던 나 역시, 누군가의 기억 한편에 남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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