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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02. 2016

이미 엎질러진 말

말을 뱉기 전에.


어울리지 않는 후회가 늘었다.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인 내가, 보지도 않던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오랫동안 하지 않아 밀린 일을 처리하듯 눈덩이 같다. 사실 눈치를 보지 않았다기보다 이젠 상대방의 표정에서 감정이 더 잘 파악되는 나이가 된 걸까.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침묵보다 나은 말이 있을 때 뱉는다는 글처럼 무게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느새 길에 낙엽이 쌓였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어디서나 보이는 초로의 노인 같은 것 말고, 좀 더 특별한 것을 찾자. 이를테면 멋쟁이 신사가 더 낫지 않나. 그렇게  길가의 늙은이는 금세 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은 고약하다.


중학교 때의 칠판 구석엔 꼭 지워지지 않는 글귀 하나가 있었다. '신사'보다 '초로'가 더 어울리는 담임. 초등학생의 탈을 갓 벗어난 아기들에게 이름보다 먼저 칠판에 적었던 그 한자. 중학생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던 단어였다. 읽을 줄 아는 사람? 늙은 교사는 중얼거리는 내 입술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나와서 써보거라. 또박또박 쓰는 글자의 모양새가 정직했던 건, 엄마의 강요로 배운 서예 탓이었다. 앞으로 1년 동안 이 글자는 칠판에서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 지워지면 네가 다시 쓰거라.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해라.


말하기 전, 말을 고칠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 어른은 어른이 아닐 거라는 말을 끝으로 담임은 교실을 나갔다. 아, 이렇게 어른의 기준 하나가 정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건대 어른이 아닌 사람은 꽤 많았다고.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음 세대에게 대신 전한 게 아닐까. 주번은 매번 바뀌었지만 네 자의 짤막한 한자는 내 몫이었다. 길게 가면 일주일, 칠판 구석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지만 하루에 두 번 써야만 했던 적도 있다.


꼬박 일 년, 한 문장을 적는 일이란 칠판보다 가슴에 깊이 남았다. 그리고 제법 선명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너를 높게 사는 이유는 미안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 때문이야. 습관이 무색하게 말을 엎지르길 반복하며 상대가 기분 나쁜 낌새가 보이면 뱉은 말의 자리를 돌아본다. 아, 이거 기분 나쁠 수 있었겠다. 먼저 닫힌 방문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형, 혹시 자요? 아까 내가 말이 미안하다고. 기분 상했을 거 같아 내가 경솔했다고. 다른 실수를 또 했으면 말해달라고.


그래 그러겠노라고. 나중에 술잔을 기울이며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형의 얼굴엔 미소가 옅게 있었다. 자신에겐 꽤 충격이었다고 했다. 요즘 그런 사람, 많지 않아.



대화를 나누며 숨 고르기를 하며 말을, 혹은 단어를 고르는 사이의 시간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어디선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힘내! 나 듣고 있어. 참고 기다리고 있어.' 일생동안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투정 부리던 소년은 마치 어른처럼. 팔짱을 낀 채 목구멍까지 달려 나오는 재촉을 막는다.


난 외로운 가지에 숨은 기억을 이렇게 꺼내어 읽다, 이내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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