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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Feb 20. 2017

거짓 위에 쌓은 사랑

영화 <얼라이드>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로 숨기고 싶어하는 걸 적당히 모른 척 살아야 하는 것이 가족의 미덕이라면 전직 스파이들의 사랑은 어떨까. 이미 보통의 영역을 벗어난 그 사랑으로, 진정 말하고 싶은 것들을 뒤덮고 있는 영화 <얼라이드>.





여느 스파이 소재 영화와 같이 능글맞은 대사들과 연출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 관객의 손을 잡고 스크린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배경이 되는 시대는 2차 세계 대전 중반. 맥스(브래드 피트)와 마리안(마리옹 꼬띠아르)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처음 만난다. 물론 처음 마주하며 합을 맞추기 무섭게, 그리고 서로가 나름대로 가진 스파이의 프라이드 때문에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독일군 장교를 사살하기 위해 맡은 임무가 잘 마무리 되고 함께 살아남아 그 미묘했던 감정을 확인한다. 사랑한다고.



그렇게 둘은 함께 맥스의 고향 영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다. 마리안은 스파이로서의 경력으로 인해 정밀조사를 받게 되지만, 결국 통과되어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마리안이 이중스파이로 의심되고 맥스는 군에서 마리안의 실체를 파악하기 전에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려 노력한다. 우려대로 마리안이 이중 스파이인 것이 확인되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맥스는 함께 도망치려다 이내 붙잡히고 만다. 결국 마리안이 자살하며 영화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 얼마나 단순한 스토리인가, 뻔한 상업영화로 치부되기 딱 좋은 시나리오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은 도입부의 사막은 소설 '어린 왕자'를 떠오르게 한다. 서로가 살며시 끌어안고 있는 포스터와 더불어 어렵지 않게 어린 왕자의 스토리 중 '장미'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고 그 암시는 매우 적절했다. 극 중 마리안은 끈질기게 불안하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눈빛이란 설명이 되지 않아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맥스에게 '집착'이란 감정을 심어준다는 것. 마치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같지 않은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에 동반되는 집착과 사소함의 확인 때문은 아닐까. 과격한 소재이긴 하지만 사랑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극대화 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요소들이 적당히 배치된다. 스파이, 전쟁, 직업군인. 어떤 확신도 주지 않고 끝까지 밀어나갈 수 있는 힘은 역시나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훌륭한 배우때문이라고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전쟁은 일상에 불현듯 파고든다. 방 안에 놓여있는 인형처럼 아무렇지 않게.


실화를 각색한 이야기치고는 '실화'라는 점에 신경쓰이지 않으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모로코에서의 암살 계획이야 있을 법한 스토리지만, 영국으로 돌아와 두 주인공이 함께 있는 장면에선 유독 폭격이 많다. 심지어 딸을 낳는 순간마저도 병원에는 폭격이 이어지니, 폭격기가 강처럼 흐르는 거리의 침대 위에서 마리안은 출산한다. 전쟁이 일상이 되었을 때의 기분을 가늠할 수 없어도, 근처에서 죽고 있는 사람들과 새로 태어나는 아이를 한 장면에 담았다는 것은 극의 개연성을 올려준다.




신뢰에 대한 고찰.


사랑이 동반되긴 했지만, 시험은 끝이 없다. 마리안이 남기는 여지들에 대해 사실 일반인이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 더 예민토록 보이는 건 맥스 역시 스파이였기 때문. 그럼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부터 의심을 해야하는가. 그 경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쫄깃하게 아슬아슬하다. 그리고 어느새 맥스 뿐만 아니라 마리안에게 집착하는 내가 있다. 제발, 허튼 짓 좀 하지 마.



믿음이 깨진 상태에서 사랑이 바로 설 수 있는 건, 과연 사랑의 속성일까 아니면 개개인이 가진 특성일까. 마리안은 정말로 스파이였고, 협박을 받았다한들 그것이 씻길 수는 없었다. 이 때 맥스의 선택이 주목할만한데, 단호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리안과 딸과 함께 도망치려 한다. 아직까지도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인지, '자신은 배신당하지 않았다.'는 자기부정일지.






시대적 비극 혹은 임무 실패.



말미에 가서 그 불안들은 합치되어 더 거대한 덩어리가 된다. 여태 사랑했던 연인의 비극적 결말치고는 허무하게 마리안은 자살한다. 가장 큰 시퀀스는 바로 그 장면, '사랑했어요 나의 사랑.'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임무 실패, 자결.'과 같은 딱딱한 장면은 너무나 큰 충격을 준다.



마지막까지 관객은 휘둘린다. 어때, 진짜 같지 않은가. 심지어 관객이 목격한 이 모든 것마저 거짓이라면. 말미에 이르러셔야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 같지만 자결을 하기 전까지, 그리고 자살을 하고 난 후에 우린 더 큰 불안에 휩싸인다.







영화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맥스 역을 맡은 브래드피트가 자꾸만 딴 생각을 하는 듯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데, 이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아보니, 이 영화를 촬영할 때 쯤 실제 부인이었던 안젤리나 졸리와의 이혼이 이유는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그래도 그는 평균 이상의 수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얼라이드는 검은색이 칠해진 종이 위에 자꾸만 색을 덧대는 느낌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예쁜 성을 지어도 끊임없이 번지는 불안을 모른 척하지 않고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그것이 사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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