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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14. 2017

관계의 마침표

홀로 찍은 온점.


말하자면 가끔 그립게 떠오르는 어떤 이에게, 오래도록 참다참다 괜찮은 타이밍을 골라서 연락을 보내는 것이다. '그냥'이라는 말은 어찌나 대단한지 모든 이유 없음을 포용하는 관대함으로 꾸준하게 들먹여졌다. 결국 당신만을 생각했다는 말이 부끄러워 솔직하지 못 했던 그 수줍음으로 다시 말한다. '그냥'




느닷없는 순간 떠다니던 실수들이 한데 뭉쳐지면 결국 9회 말의 그 때가 오고야 만다. 매일같이 무수하던 대화가 뚝 끊기고 동앗줄 같던 관계가 실보다 얇아지는 때가. 쌓인 업보야 내 몫이지만 그 질척거림은 전보다 덜어졌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는 사람들만 챙기기에도 바쁘다.'고, 아는 사람이 읊었던 말이 득이 된다 여겼는지 꽤 오래도록 그리 살아왔는데. 사실 내가 그로부터 언제나 떠난 사람이 아니었던가 짐짓 서늘해지는 한 발자국이 참으로 멀다.


시간의 간격으로써 '오랜만'이라는 표현이 되기 전에 연락을 갱신하던 나는, 분명 피곤함보다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했다. 깊고 진실되게 사람을 사귀길 원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한 다른 이들에게도 인기 있는 존재였으니까. 가까운 친구 하나는 나의 행동을 보곤 참 피곤하게 산다며 말했다. 그 얕은 말에도 쉽게 멍이 들던 나는 흥분을 하며 행동을 정의하고 따졌는데 난 그마만큼 나약한 존재였다. 그저 가볍게 '난 그냥 이게 좋아' 라고 말해도 됐을텐데.


그 날 역시 그렇게, 관계를 쉽게도 끊었다.




어느새 그런 사이가 되었다.


고민 없이 친구라 말할 사이였던 우린 더 이상 무슨 하루를 보내는지 종종 묻는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서로의 심심찮은 벌이와 꼭 그만한 살림을 살며 지갑 무게까지 대충 알던 우리는, 무조건적인 애정같은 건 꼭 다른 친구에게만 쏟았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가끔은 부러웠다. 모두가 좋아하는 너를 배우고 싶었다. 사실 가끔보다 더 자주, 난 네가 부러웠다. 질투로 이어지는 부러움이 미움으로 바뀌는 일도 순식간이었다. 거리를 두고 마음을 다듬을만큼, 스스로의 좁은 아량에 한숨이 나오고 순수한 기쁨과 축하를 남기는 일이 어려워 초라해지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목메지 않는 너를, 본받을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 사실 목을 메며 그 보상심리에 휩쓸린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침몰하긴 싫었다. 어려운 말들을 쓰는 사람들과 그 무리의 세상에 갇혀있기 싫었다. 서로를 칭찬하며 바깥을 보지 않던 우리끼리의 삶을 떠나 도망쳐야 했다. 매일 같이 하던 나와의 시시한 연락들이 소용없어진 너와, 여전히 그 재미없고 두서없는 대화에 미련이 남은 나는 그렇게 멀어졌다. 가라앉고 냉소적인 태도는 딱 여기까지라고 나의 지점을 정해야했으니까. 더 깊게 멀어지는 너를, 혹은 다시 높게 떠오르는 너를 가만 지켜보아야 했다.


서로 채근하지 않겠다고 한 무언의 약속 같은 건 또 지나치게 철저히 지켜냈다. 돌이켜보면 아직 갈림길에 서기 직전까지 떠들었던, 너와 나의 미어지도록 낭만했던 날들이 때로 그립다. 그래서 꼭 잘 되길 바란다. 여전히 난 너를 친구라 말할테니 부디 너에게 역시 내가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 언젠가 연락을 다시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또 어설프게 '그냥'이라는 말을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당신을 생각해 보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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