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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29. 2017

그의 받아쓰기 점수는

영화 <1987>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변의 몇 사람이 시사회 티켓을 요청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던 영화가 있다. 1987년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사건의 시발점이 된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며칠 전 <남영동 1985>를 케이블 티브이에서 시청한 뒤라 대공분실의 작동이 긴 세월 이뤄졌음을 느끼게 하는 년도의 기술이 와 닿는다. 전두환이 4.13 호헌조치의 발표로 민주화를 거부하며 박정희의 뒤를 잇는 군부 독재의 기틀을 다질 때 수족이 되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관이었다.



삼청교육대, 광주 민주화운동과 같이 꾸준히 회자되는 전두환의 만행은 그가 얼마나 악마 같은 존재였나 되새기는 영화는 환영이다. 그러나 영화의 완성도가 역사적 가치를 통해 변명되어선 안될 일. 영화 <1987>은 1987년의 한국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영화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는가.




기본적인 역사의 틀은 이 정도로 하고 영화가 흐르는 1987년도로 들어가 보자.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다. (생략된 고문과 구타의 과정은 <남영동 1985>를 참고하면 좋다.) 그의 사망 후 상황은 바쁘게 돌아간다. 의사를 몰래 태워와 이미 숨이 끊어진 그를 진단하고 대공수사처를 맡고 있는 박처장은 치안본부장을 시켜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전무후무한 억지 발표를 한다. 기자들의 불신은 커져만가는 가운데, 시신을 목격한 의사의 양심선언과 시체 화장을 협조하지 않는 최 검사까지 의혹이 퍼진다.



이런 너저분하고 너덜거리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단연코 80년대이기 때문이라 해서 꼭 그렇다고만 볼 수가 없다. 삶의 척도가 낡은 방식과 구태의연한 것으로 점철되니 영화 전반은 너무 한참의 옛 것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너무 많이 잘린 꼬리

사건이 커지자 꼬리를 자르려는 윗선은 그 꼬리로 고문을 주도한 조반장을 고른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진실을 알고 있는 조반장은 뜻을 거슬러 반항하고 가족까지 건드려 협박하는 박처장에게 항복하고 마는데, 무력을 앞세워 통제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은 서로 꼬리가 되지 않기 위해 다툰다. 자신이 정당해야만 한다는 믿음의 공포가 교도소에서 시끄럽게 불러대는 찬송가로 대변된다. 여태 믿어온 행위의 정당성은 빨갱이로부터만 오니까.



꼭 해야만 하는 일

시도 때도 없이 있는 검문소와 백골단. 민주화운동을 꾀하는 사람들에게 정보지인 비둘기를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은 매번 조카 연희를 시킨다. 누가 붙잡혀가도 이상할 것 없는 시대에 험상궂은 인상이 걸림돌이다. 결국 한병용은 노출되어 대공분실로 잡혀가고 만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다가 박처장의 협박에 손을 든다. 그럴 수밖에 없다. 조반장과 똑같은 수법이었으니까. 위험한 일에 자꾸 엮이는 게 싫지만 마지막까지 비둘기를 전달하는 연희.




이한열의 죽음

갑자기 터진 데모 현장에서 연희의 손을 잡고 피하는 이한열은 멋지게 생겼다. 연희는 그 모습에 반해버리지만 강경 운동권인 그와 엮이고 싶지 않다. 동아리 활동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틀어주는 것이나 집까지 찾아와 데모 전단을 주고 가는 일까지. 한참 뒤 본 신문에서 이한열은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피 흘리고 있다. 그는 운동의 최전선에서 다른 친구들을 보호하려다 발사된 최루탄에 머리를 가격 당한다. 그의 죽음이 전파를 타고 항쟁에는 더욱 불이 붙는다.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이야기했을 때, <1987>이 큰 울림이 되는 기록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검색 포털에 박종철 열사에 대한 인물정보 기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부끄러움은 영화를 되돌아보며 정보를 찾는 내 몫이기도 했다. 그 뜨거운 날과 같이, 마치 평행처럼 30년이 흘러 도로 민주화를 이뤄낸 최근의 광화문을 떠올리게도 했다. 미련하게 과거를 반복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 그들은 여전히 1987년의 그 날로부터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여전히 이 영화는 아쉽다.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와, 과연 1987년의 뜨거운 역사를 담기에 영화는 충분했는가. 극 후반 꾸준히 나오는 이한열의 신발이나 성당 글라스데코의 못 박힌 예수상, 연희가 이한열을 찾아 달리는 장면까지. 분위기를 망칠 정도로 진부한 클리셰의 범벅은 아무래도 아쉽다. 이한열의 애정사야 궁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나 구태여 넣어야 했을까 싶은 느낌. 인물의 등장 비율도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길게 쏟지 않았어도 될 부분에 힘을 주는 것이 방향의 상실로 의미까지 희석되는 그 안타까움.


극의 중반 강경하게 소신을 밀어붙이던 최 검사는 검사직을 잘리고 나오는 길, 윤 기자에게 받아쓰기나 잘 하라며 자신의 물품이 담긴 박스를 내려놓고 간다. 박종철 사망 사건의 진실을 가지고 달리던 순간이 무색하게 1987년의 기억을 얼마나 잘 받아쓴 것 같은지, 감독에게 묻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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