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어기는 평범하다. 과학을 좋아하고 게임도 자주 하고 우주를 동경하는 아이.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하나, 선천적 기형으로 인한 수술. 그렇게 얻은 생김새. 모든 것이 뒤바뀌는 어기의 세상은 가혹하다. 좋은 가족이 있는 소년이 다행이다.
시작부터 이미 우리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행보를 보일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좋은 방향이 아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수술 자국이 가득한 얼굴을 보고, 모두가 꺼릴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을 이야기라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린 어째서 다름에 관대하지 못한가.
학교에 들어가기로 한 어기는 학기 시작 전 학교를 구경한다. 소개해 줄 친구는 셋,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표정을 숨길 수 있는 어른이 낫다는 소년의 독백은 첫 번째 난관에 봉착하게 한다. 맞다, 그 생김새에서 오는 거부감은 숨기고 아닌 척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신감은 없지만 자존감 있는 소년 앞에서 자존심을 부릴 수는 없지 않나.
가족들의 다정한 응원을 번갈아 받는 어기. 누나 비아는 말한다. ‘돋보이는 것들은 원래 잘 섞이지 못해.’ 감성적인 말보다 훨씬 와 닿았던 말은 아빠의 것이었다. 시종일관 아이같이, 싸우고 온 어기에게 이겼냐는 말이나 괴롭히는 아이를 들이받으라는 말에 철없어 보이기도 한 그런 어른. 가끔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는 잘난 체는 좋지 않음을 일컫는 현실적 조언이 가슴을 울린다.
‘그렇지만 과학시간은 예외야. 싹 다 발라버려.’
어기의 위트는 아빠의 유전자가 분명하다.
‘옮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할 땐
친절함을 선택하라.
잘 될 거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힘든 어기의 학교 생활에서 부러운 점은 셀 수 없다. 참된 교사는 특히 더. 수업 방식과 특혜나 부당함 없는 태도를 차치하고서라도 브라운과 터쉬만 선생의 인간성은 철학적 완성형에 가까운 탁월함을 갖는다. 매번 어기를 괴롭히는 줄리안. 어기의 친구 잭 윌은 싸우고 만다.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에 대한 교육을 실천할 때도 그렇다. ‘지킬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떤 건지 나도 알고 있단다.’
매번 부모님이 어기를 돌보느라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누나 비아는 동생에게 나쁜 소리 한 번을 안 한다. 비아 역시 새로운 학기에 접어들었는데 비아를 마주친 미란다의 표정이 달갑지 않다. 친하던 친구가 차갑게 대하는 이유를 모르는 비아는 연극부 앞에서 만난 저스틴으로 인해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는데 우연히도 미란다도 그곳에 있다. 저스틴과 연인이 되고, 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수군대는 듯한 기분 속에 있게 된다.
그렇게 일상을 겪는 동안 발생하는 문제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고 어기가 겪는 것과 유사하다. 어기는 솔직한 말로 잔인해진다. 자신을 보고 무조건 피하는 고통보다 더 괴롭냐는 말에 비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결코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보다 가볍다 하여 괴롭지 않을 수 없는 법. 키우던 강아지가 죽음을 앞두고서 비아는 어기에게 처음, 쓴 말을 뱉는다.
‘세상 모든 일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야.’
자신에게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할머니는 비아를 위로했다. 어기는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많다며, 항상 나는 너의 편이라는 말이 먹먹하게 마음에 닿는다. 사실 미란다는 부모님의 이혼 후 떨어진 자존감과 우울로 인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죄책감을 느껴 비아를 멀리했는데 비아의 가족이 관람하러 온 그 날 주인공을 양보한다. 비아는 주인공이 된다. 자기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언제나 자신을 돌봐주던 천사 미란다와 함께.
형편이 썩 좋지 않은 어기의 친구 잭 윌. 핼러윈에서 분장한 어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기를 괴롭히는 무리 사이에서 심한 말을 하게 된다. 줄리안과 친구들은 꾸준히 어기를 괴롭힌다. 다시 외톨이가 된 어기. 잭 윌과 어기는 다른 반 여학생 썸머의 도움으로 오해를 푼다. 소속감과 그 이탈의 공포를 안다면 우리는 윌을 이해할 수 있다. 용기는 나약함이나 두려움과 별개로 작용하니까. 줄리안은 어기를 괴롭히는 일이 발각되고 처벌을 받게 되는데, 함께 등장한 그의 부모들은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못난 사람이며 못난 어른이다. 가정 형편과 도덕적 인성이 관계없음을 보여주는 모습은 두 소년으로 대비된다.
어기를 놀리기도 하고 약 올리기도 하는 가족들. 모든 것을 오냐오냐하지 않는 자세. 그들의 동정과 연민 없는 사랑은 진실되다. 얽히고설킨 이야기지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배려와 사랑은 영화에 듬뿍 묻어난다. 그리고 개인과 단체, 삶에 가치에 대한 여러 가지 근사한 고찰까지.
잭 윌과 어기가 서로를 똑바로 마주하고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냐는 장면, 가식적인 소년 줄리안이 교장 선생님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장면의 직설적 대화와 비교하자면 가족과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화해와 오해를 푸는 방식은 죄다 은유적이다. 절친에게 연극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고, 오지 말라는 딸과 싸우고도 참석하는 것이나, 불량 선배를 퇴치하고 괴롭히던 모두와 친구가 될 때 말이다.
친구를 처음 만나던 날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며 남을 신뢰하지 못해 고개를 푹 숙였던 어기. 자신이 믿지 않던 그 수줍은 세상을 차차 익혀가며 모든 말과 행동,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마음이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반대로 우리는 어기를 통해 가끔 진솔하고 단순한 방법이 힘을 가질 때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지막 장면, 어기는 단상에 올라가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그 사람이 어떤 싸움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가만히 지켜보라.
그렇다. 그의 우주유영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길이면 된다. 섬세하고 다정한 눈길로 어기가 유영하는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험난한 우주 속, 이윽고 헬멧 없이 숨 쉬는 방법에 도달할 수 있다. 맹목적인 찬사와 응원은 바라지도 않는 소년의 유영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