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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13. 2019

자유를 연기하는 일에 대하여

영화 <자유연기>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지연은 배우다. 엄마라고 말하면 정말 엄마가 되어버릴 테니까 배우라 불러줘야 한다. 육아를 하는 배우. 그 고단함은 누가 뭐라 해도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여러 사람들이 지연의 삶으로 들이닥치고 지연은 꿋꿋하게 버티지만 아무래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철없는 남편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는데, 그건 지연의 세계를 위협하는 일이 된다. “나도 힘들어.” 지연이 못 먹는 떡볶이를 사놓고 생색을 내다가 남편은 말한다. 현재에서 도망치는 대사가 끔찍하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지연은 남편을 배려하며 아이를 도맡아 키우다시피 하고, 어느 날 유명 감독에게 오디션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남편 역시 아이를 맡아주기 거부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해 보아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늙은 아버지에게 맡긴다. 손까지 떠는 노인은 보기에도 불안하다. 이어서 모든 불안을 제치고 오디션장으로 가지만 그녀는 홀대받는다. 약속 시간도 늦고, 배역은 생각과 달리 단순한 단역인 데다 책임자의 태도마저 별로다. 이럴 수 있냐, 정말. 지연은 마지막으로 자유연기를 시작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지연은 결코 아이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원망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가족의 구성원으로 가정을 지탱해야 하는 건 지연과 남편의 일이니까. 그래서 지연이 남편에게 생계를 위한 일을 제안할 때 “연기 말고”라 하는 건 코미디다. ‘예술은 돈이 안 된다’ 이 명제는 예술이 시작된 이래 오로지 참으로만 작용하고 있어서 창작자에게는 그 자조가 내면으로 쉼 없이 몰아친다. 남편이 자신의 내면에게 물어봤다는 ‘자유’는 얼마나 우스운 무게인가. 책임에서 도망쳐 자신을 영위하겠다는 오만은.


 그와 더불어 주변인들의 대사는 하나같이 지연을 향하고 있으나, 어떠한 책임도 없다. 특히 젖 떼기에 관해하는 말들이 그렇다. 가슴이 커지니까 젖을 떼지 말라고 하는 말이나, 젖을 떼려면 빨간약을 바르라는 말. 여기서 ‘젖’은 ‘정’으로 들리기도 한다. 관객이 지연을 보며 연기를 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감지할 때, 함부로 포기를 선택지에 올리는 게 아니라 어째서 출산은 개인의 자유를 치명적으로 구속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지연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아니다. 현실 복지제도에서 유아를 세 시간 조차 돌보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라.



 그러나 철없는 남편은 너무 뻔하다. 지연의 환경을 극한으로 몰아넣기 위해 마련한 장치라면 창의성 점수에서 0점을 주겠다. 그가 누리는 자유는 지연의 불가피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센 뻔뻔함까지 지녔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려 하면서도 혹, 아이에게 해가 될까 고무장갑과 머리망까지 끼운 지연은 안타깝다. 영화에서 남편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현실도 그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연이 이윽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을 때, 그 세계가 형편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처참히 무너진다. 마지막 자유연기에서 진실로 진실로 자신이 하고 싶은 드넓은 자유를 드러내는 일, 그건 자유를 연기하는 일이었다. 지연이 가슴속 독백을 토할 때 노력이나 재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첫 장면에서 나온 대사가 다시 오버랩된다. 운으로 대스타가 된 배우, 그러니까 성공은 운이라고. 해야 하는 일과 할 수밖에 없는 일이 과정과 상관없어질 때 인간은 무력해진다.


 지연은 마지막으로 울다가도 프로필을 찍어야 한다는 말에 정신 차리며 사진을 남긴다. 연기로 밖에 할 수 없는 자유는 잔인하다. 연기하는 자유는 과연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 지연은 고무장갑도 머리망도 없이 담배를 피운다. 전투를 치러낸 사람처럼. 분명 그건 자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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