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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금지구역

됐으니까 제발 그쯤 하고 넣어둬.

by 박하


정말 웃기지 않아요?


그녀는 취했다. 냄비에 담긴 샹그리아는 바닥을 보이고 내가 따로 사다 놓은 럼주까지 땄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난 취하지 말아야 하는 입장. 바라는대로 되지 않는 삶이란 잔혹한데도 그 또한 삶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알고 보면 바라는대로 쉽게 이루어지는 사람이 없으니 바라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고. 슬슬 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사람들 뒤에 나는 할 일이 남아 다시 노트북을 연다. 이쯤 되면 주정을 들어주는 일에 가까우나, 함부로 여인네를 들어다 방에 옮길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니.


너나 할 거 없이 성공한 삶이라 자부하는 그 자부심엔 박수를 쳐주고 싶으나, 원하지도 않는 지긋지긋한 조언이 넘쳐나는 시대. 정성스러운 조언에 성은이 망극하지만 노땡큐다. 도대체가 어떤 이유로 그리 조언들이 많은지 이젠 조언이라는 단어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 조언하는 자에게 하는 조언을 쓰고 싶다고 하는 그녀. 작가를 꿈꾸는 학생이란다.


DSC06978.jpg 스페인, 세비야 (2014)


그래, 하려고 하는데 시키면 괜히 하기 싫은 거 있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가.


"아니, 오빠. 그게 아니라 생각을 해봐요. 스물의 인생을 사는데 왜 서른이 끼어들지? 이거 교통사고잖아, 벤츠가 마티즈 보면 별로 신경 안 써도 마티즈는 벌벌 떨거든. 근데 자꾸 끼어들어. 운전을 왜 저따위로 하느냐고. 그러다가 운전이 미숙한 마티즈는 그대로 꼬라 박고서 보험 처리할까? 아니지, 그냥 처박으면 죽는 거야 마티즈니까."


그래 사실 뭐, 한두 번 정도야 그러려니 이해한다. 잘 되라고 하는 소리도 지겹도록 들었지만 잘못되라고 하는 소린 아니니까. 그나저나 저 친구, 혀가 꼬부라졌는데. 나도 지금 이 민박집에 얹혀살면서 스텝으로 있으니 험한 소리를 하거나 자유분방하게 있을 수는 없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잘 산다. 그것도 꽤. 그렇기에 이런 저런 태클을 많이 받아 멍이 들었겠지. 인형으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인간으로 변신하는데 술이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값 싼 일이다. 답답해서 온 여행이라는 말에도 좋은 가방, 좋은 구두가 보이는 일은 한인 민박에서 드물지 않기에 그녀도 짐작이 든다.


스페인, 세비야 (2014)


광장으로 갑시다.


저녁의 광장은 한산했다. 옛날 CF 중에 김태희가 모델로 나와 플라멩코를 추던 세비야의 에스파냐 광장. (민박집 사람들을 가이드 해주며 이 말을 얼마나 했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둘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역시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웃고 떠들며 즐거워한다. 사람이란, 평균치를 기준으로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그 '조금' 다른 부분이 서로 다른 사람으로 점철되어지는 일이기에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가 왁왁거리며 사진을 찍는 곳에서, 사진을 남기기보다 그 속에 앉아 시집을 읽기로 선택한 그녀의 시간을 존중해주기로 한다. 그녀는 방대한 세계에서 필시, 자신이 단순하게 나누어지는 일을 견디기 힘들어한 것이리라.




물을 한 잔 떠다 주는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녀의 일정이 걱정된다. (아니, 일정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유독 분노하는 부분이 있다. 어느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는 태도, 특히 원치 않은 요청에 따른 가르침에 분노를 가득 담아서 그 말들이 뜨끈뜨끈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런 용기가 있다면, 자신의 험난한 삶을 자랑하지 않을 각오도 있으리라 믿어봐야지.


DSC07367.jpg 스페인, 세비야 (2014)


맞아, 참 분위기 모르고 끼어드는 사람 많아.


"엿이나 먹으라지. 왜 그렇게 남의 인생에 핸들을 잡으려 들어. 자기 핸들이나 잘 잡고 가면 되는데, 망할.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이번에도 그래요. 여행 떠난다니까, 시간 많으냐, 돈 많으냐.. 오지랖들은 그렇게 넓은데 내 귀는 또 더럽게 얇아요. 여행 떠난다고 한 것도 어떤 언니가 젊을 때 떠나는 거라고 해서 온 건데.."


그럼, 더 오래 여행한 사람으로서 나도 조언 하나 하도록 할게. 지금 자러 가는 게 좋을 거야. 마티즈씨.


"아니, 여태 뭐 들었어요?"


쉿, 같은 마티즈라도 꼬라 박으면 곤란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