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니.
전어가 철이 좋다. 비릿한 내음이 감도는 부두에, 장화는 속절없이 냉기를 뚫어도 이마엔 땀방울이 맺힌다. 무표정에 잠겨 바다를 내다보아도 신경 쓰는 이 하나 없으니, 만족스러운 외톨이의 상태. 그대로 둘 것처럼 얌전하던 바다가 금세 포악해지니 바짓단에 파도가 튄다.
방학이 아닌데다 평일이라 모슬포는 고요했어도, 어디서 나타난지 모를 단체 관광객에게 하나뿐인 게스트하우스는 방을 전부 내어주었다. 해는 떨어지고 주인에게 쥐 잡듯 쫓겨난 뒤에야 배낭여행자가 몸을 누일 숙소는 없나 살핀다. 바닷가의 펜션 가격은 절망적이었고 찜질방 같은 것은 제주에서 찾기 어려우니, 마침 힘에 겨운 투로 욕도 뱉는다. "아니, 제기랄. 단체관광객이면 따로 펜션을 잡을 일이지."
능글맞은 택시운전수들은 작은 동네를 헤매는 배낭여행자를 입맛 다시며 쳐다본다. 서귀포까지 5만 원에 가줄게, 아니면 송악산까지 2만 원. 방금 송악산에서 걸어온 내가, 다시 걸어갔으면 걸어갔지 낭비는 안 해. 간간이 보이는 아줌마를 무턱대고 잡아 저렴한 숙소를 물어도 담합이 잘 되어 있다.
해가 진작 꺾이고 커다란 횟집 뒤로 보이는 작은 숙소를 발견할 때까지 나는 우왕좌왕해야만 했다. 게스트하우스라 적힌 집 앞에서 주인을 부르니, 아직 청소도 안 한데다 난방도 되지 않는다고 내일 오픈한다며 난감해한다.
"괜찮아요, 지붕만 빌려주세요."
내가 기억을 못할 리가 있나.
방어로 매운탕까지 끓여주시는 할머니가 숙소의 주인. 나는 그 당시 숙소의 첫 게스트였다. 공사가 끝나고 밥이 없어 라면을 끓여주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거실도 그대로. 해가 바뀌는 동안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깨끗하던 벽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고, 다시 찾아온 나는 과거에 패기 있게 말하던 사진가가 되어있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것에 들뜬다. 어떤 조건에 의한 관계가 끊어지기에 딱 좋은 것이라면, 조건을 유지하는 에너지에 비하여 그 관계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우리가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눈 앞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헤어진 옛사랑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된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테지만 그중, 여행이라는 카테고리는 사람을 보다 저돌적으로 만든다.
매운탕을 먹고 그 길로 나온 산책도 마찬가지였다. 달랑 읽던 책 하나와 카메라만 들고 나와 불안한 먹구름이 우산을 챙겨올 걸, 하는 생각도 들게 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을씨년한 가을 저녁의 바람은 맵다. 등대마저 고장이 났는지 자고 있는 바다는 파도가 높게 일었고 마을은 컴컴하다. 모슬포라는 동네는 묘하다. 마라도나 가파도를 가기 위해 어쩌면, 지나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로 형성된 마을 같아 날씨와 같은 감정선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밝은 빛을 따라 온 것은 가로등마저 띄엄띄엄한 마을 구조 때문이었다. 눈이 부셔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해 땅을 보는데, 그만큼 선명하고 길쭉한 그림자가 있다. 고기잡이 배 하나가 우두커니 홀로 섰다.
거기서 뭐해요.
질문이라면 끝이 올라갈 테지만 낮게 깔리는 경계의 문장은 힘이 있다. 아마 나를 보고 하는 말이리라. 다른 외부인은 없으니 분명 내가 맞다. 빛 좀 받으며 책을 읽겠다는 변명이 무색하게 바닥은 물바다여서 순식간에 나는 꼬질꼬질해졌다. 뭐, 지나가면 안 됩니까.
"거기 서 있으면 물 튀어요. 조심하쇼." 지레 겁 먹은 나는 멍청이다. 어정쩡 자리를 비켜 멀찍이 바라보니 내리는 생선이 많다. 기계 같이 얼음을 덮고 차로 옮겨 싣는 과정을 무심코 보다, 옮기는 사람들을 본다. 장화에 고무장갑에 별로 다를 것 없지만 얼굴이 검다.
두루두루 살피며 곁눈질을 하는데 살짝 째려보는 모습이 무섭다. '바닷사람은 억세다.' 고정관념일지라도 그 눈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피하지 말자.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물론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어도, 말을 걸만큼은 충분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만만 했던 건지,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곧장 그들은 반장님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반장은 웃으며 '젖어도 책임 못 진다'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 세계로 첨벙 뛰어들었다. 깊이를 걱정하지도 않고.
반장이 다짜고짜 얼음을 한 삽 퍼서 내 신발가로 뿌린다. "우리는 발 시린데, 사진 찍으려면 우리 심정을 같이 느껴야 하는 거 아뇨?" 다들 껄껄 웃는 통에 나도 웃어버린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찍을 맛이 나지. 그래도 일부러 적실 필요까지 있나.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란 말은 취소.
아줌마들의 일터에 흔히 들리는 트로트 따위는 없어도 왁자하다. 뜨거운 물 가득 부은 컵라면을 기다리면서, 담배에 불까지 붙여 일꾼들에게 넘기는 반장과 주임. 젖지 않은 곳을 찾아 앉으라는 말에 나도 엉덩이를 붙인다. 더럽게 춥네.
"야! 너 일 잘 한다고 데리고 왔는데 왜 힘을 못 써! 네 입으로 잘 할 수 있다고 그랬잖아 크크. 만만치 않지? 코리안 가이들은 인마, 솔져. 응? 해병대 말야. 밀리터리를 갔다 와서 베리 스트롱하다고. 알아??"
"주임, 너 공익이잖아. 인마."
반장의 지적에도 껄껄 웃으며 영어를 섞어 말하는 주임은 유쾌하다. 동갑이라고 말하는 베트남 남자는 담배를 받아 물곤, '힘들어요'하며 주저앉는 모습이 애잔하다. 이젠 한국인을 볼 수 없는 힘든 일터에 보이는 그들. 사실, 말을 안 하면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얼굴들이 새카맣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중년이 휴대폰을 들고 펑펑 사진을 찍어댄다. 작업 반장이 노발대발하며 달려들어 휴대폰을 낚아채니 중년은 얼어버린 듯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저 사람은 찍는데 왜...
가끔 저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참 얄궂지. 자기들 찍을 때는 그리도 싫어하면서, 우리가 뭐라고 하면 치사하대. 저 친구들은 가뜩이나 타지에서 문제 일으키면 쫓겨날까 봐 아무 말도 못하는데. 일손이 부족한 이런 곳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막말로 쟤들이 일 안 해주면 전부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하면서, 뭐가 그리 잘났다고 서로 으스대는 거야. 건방지게.. 그나저나, 작가 선생 물 끼얹으면 금방 갈 줄 알았어. 우리는 장화라서 젖진 않거든 크크크.
역시 일부러 뿌렸구나. 컵라면이긴 해도 오징어랑 소라까지 넣으니 해물탕이 따로 없다. 목돈 크게 만지는 뱃일에 담배까지 참으며 알뜰하게 전부 다 가족에게 보내니 독종들이라 말하면서도, 손이 시린 친구에게 주임은 장갑을 한 겹 벗어 건네주고 있었다.
못 쓰는 거야.
살며시 떠나는 날 따라온 작업 반장이 건네는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전어 몇 마리가 뒹굴고 있다. 참 내, 못 쓰는 걸 왜 줘요? 이런 거 받자고 그런 거 아닌데. 나 같이 신경질 내는 놈한테 사진도 찍혀 주고. 부러 퉁명스럽게 굴어본대도 저 멀리, 담배를 태우며 고개만 딱 끄덕이는 그들의 모습은 이길 수가 없다.
아, 그쪽은 미리 물어봤잖아. 존중이라고 할까. 우리도 느끼는데 쟤들이라고 안 느끼겠어?
어깨를 툭 치고 돌아가는 반장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린다.
살갑게 손 좀 흔들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에이, 옷에 소금물 다 묻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