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 반해 버릴지도 몰라.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쁜 표정 하나 짓지 못하는 그의 첫인상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그런 부류였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듯, 애정을 듬뿍 받아서 더 빛나 보이는 사람. 그 낯선 에너지가 가까이 올 때면 눈이 부셔서 손 틈 사이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 그 빛에 머리를 디밀어보다 화들짝 놀라 보기도 했다. 뭐 이리 밝은지.
그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나는 그와 오묘한 기싸움 같은 것을 했다. 비록 그는 전혀 모르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겠지만. 똑같은 것을 하는데 나보다 더욱 많은 관심을 받을 때. 나의 경험이나 고찰을 가로챌 때. 그리하여 매서운 질투, 모난 마음이 흘러나와 싸움을 벌이려 버럭 언성을 높여보기도 하지만.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먼저 사과를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고수였다.
늘 그렇게 마무리되는 통에 나는 멋쩍어진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지만 못돼 처먹은 나는 그 낯짝에 침 뱉기를 즐겼다. 오랜만에 어려운 적수를 만나 더러 흥분도 된다. 새침데기 같은 성격이 남자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어도 끝내 내 입장을 고수했다. '과연, 언제까지 저럴 수 있을까.' 이상한 객기를 부리며 투덜대는 점잖지 않은 나의 모습에 정말 질려버릴 텐데.
갈 길이 달라 헤어지고 나서도 그는 드문드문 연락을 했다. 가끔 도착하는 느닷없는 연락에, 바쁘다고 답장을 미루며 비싼 척 굴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바쁜데 왜 연락하고 난리야." 말은 그래도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 입가도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난다.
따르는 사람도 많아지고, 요리를 잘하는 그는 꽤 익숙해진 모양새로 남들보다 일찍 눈을 뜬다. 엄마처럼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으나, 나의 태생적 나쁨은 그 성격을 인정하기 전에 그를 시험하기에 이른다. 어쩜 저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스믈스믈 올라와 기회를 노린다.
그에게 욕을 시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까다로운 나와 늘 친절한 그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난 모두에게 공평하고 일관되게 불친절한 태도로. 반면에 그는 나날이 높아지는 점수에, 그리고 그 빛나는 모습에 화르르 타 버리진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친절하게. 그 친절함에 나도 가끔 풍덩 빠져버리고 만다.
마주 보며 웃는 일도 많아지고 추억이 쌓일 무렵, 그는 많이 힘들었나 보다. 며칠이나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자, 다른 친구들의 걱정은 금세 모습을 바꾸어 구실 없는 짜증이 되었다. 나의 투덜거림은 그를 제외하고 모두를 향했다.
도대체 왜 그가 언제나 너희를 돌봐줘야 하는지, 왜 그는 늘 친절해야만 하는지. 만들어진 이미지에 묶여 늘 그래야 한다는 인식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건지. 그래, 나는 화를 냈다. 늘 신경질적이고 쪼아대는 나의 말투도 익숙하게 여긴 그들은 나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친절한 그 뿐만 아니라 나의 불평에도 익숙해져서.
결국 문을 두드리는 건 나였다.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다 나는 다시 고약해진다. 가능하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배고파, 라면 좀 끓여줘."
"..네가 끓여 처먹어 새끼야."
이제는 종종 내가 먼저 연락을 한다. 나의 어느 동경과 같은 그 사람을 보면, 나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매력을 한껏 발산해낸다. 이런 성격도 있다고 말하는 의도와 달리 역효과로 그치기 일수지만. 그런 투덜거림에도 여전히 그는 서두르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 걸 보면, 그칠 줄 모르는 질투가 그나마 약해진 감이 없지 않다.
만인의 연인. 내가 그에게 지어준 별명을 듣고 너털 웃음을 터트리던 그. 그러나 어느 누구의 연인도 될 수 없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남모를 고충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던 건, 어떤 이유였을까. 문득 예전 그의 모습이 떠올라 낄낄 웃으며 약을 올린다.
그러니까 가끔 욕도 하고 살아.
저번에 보니까 잘 하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