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부엌

엄마와의 전쟁이 끝나고 난 뒤.

by 박하

나는 쥐새끼처럼 부엌을 살핀다.

그 밤 저녁, 구워진 만두 몇 쪽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매번 그랬다.


밥을 먹으러 내려오라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야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식성 깨나 엄청난 둘째와 편식 심한 첫째는 그렇게 엄마를 들볶는다. 스물네 시간밥을 짓는 사람이 아니건만 엄마는 이미 그런 존재인 것처럼 언제나 먹을 것을 차려 놓았다.


DSC00217.jpg 전주, 카모메 전북대점. 정말 맛있다.


결코 엄마의 식탁이 사진처럼 화려하진 않았다. 우리의 고교 시절 역시 스스로의 학구열이란 대단치 않았어도 사회의 강제성은 대단하여 야간 자율학습은 필수였다. 집에 오면 열 한시가 되는 시점에 이모네 식구까지 함께 지내는 대가족은 전부 잠든 시간이었고, 우리는 둘이 앉아 사온 만두 열 판을 전부 해치우곤 했다. 그 시절의 우린 스트레스성 폭식이었는지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먹지 못해도.


누구 하나 잠에서 깨어 마주치는 두려움이란 도둑의 그것과 같아서, 계단을 내려가기가 마뜩잖아도 나는 매서운 식욕에게 이길 만큼 강인하진 않았다. 누군가 깰까 봐서 부엌 반대편에 있는 욕실 불을 켜 놓고 부엌을 뒤적거린다.


달걀 프라이 하나와 김 한 봉지, 김치찌개 한 그릇, 빵 한 봉지가 놓여 있을 때도 있었고 정말 가끔은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어도. 여행을 하고 돌아온 아들은 요리에 꽤나 익숙했지만 엄마에게 나는 영원히 라면 하나 끓여먹지 못할 멍청한 아들이었다.




IMG_6921.jpg 나는 여전히 엄마처럼 동시에 여러 요리를 하지 못한다. <엄마의 식탁(위), 나의 식탁(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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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샌드백이었다.


시골이라 함은 주변에 편의점이 없음을, 지갑만 들고나가도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는 도시가 아님을 말한다. 주변엔 별과 포도밭이, 들과 기찻길이. 나는 버스가 끊기는 저녁 여덟 시가 지나면 이 외딴집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결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한심하다는 비난을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말만 번지르르한 아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행동을 늘어놓으며 우쭐대는 사람이었다. 나의 언짢은 일로 인해 저녁을 먹기 전,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나면 무슨 배짱인지 저녁을 먹지 않았다.


새벽의 난 다시 계단을 내려가도.


잘못을 하지 않은 엄마는 나의 화풀이를 받고도 밥상보를 덮어 한 명의 식사를 남겨 놓는다. 미련할 만큼 엄마 특유의 고전적 역할에, 그 충실함에 울컥하고 만다. 가끔 꾸역꾸역 맨밥을 먹기도, 식탁을 손대지 않고 라면을 끓이기도 하는 나의 어른스럽지 못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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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부엌의 남겨진 내 몫의 식탁엔 기름이 뜨는 갈비라던가, 생선은 없다. 식은 채로 먹을 수 있는 음식. 그건 어쩌면 엄마에게 남겨진 마지막 모성애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철없는 아들은 자취를 오랫동안 했어도 아직 깨닫지 못한다. 어묵을 볶는 것, 김을 굽는 것, 달걀을 부치는 것. 그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아버지만을 위한 진 밥이 싫다며 있는 대로 식탁에 불만을 쏟은 뒤. 밥을 먹지 않고 계단을 쿵쿵거리며 올라간 아들을 위해 저녁으로 갈비를 굽고도 새로 햄을 구워, 새로 지은 된 밥을 식탁에 놓는 것도. 그러나 오늘도 나는 참 엄마에게 가혹하게 굴고 만다.


늦은 밤, 수저도 없이 팬에 올려져 식고 있는 만두를 손으로 집어 쥐새끼처럼 집어먹는다.


그래. 그 밤 저녁, 구워진 만두 몇 쪽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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