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용서하지 않는다.
벌써 두 시간 째,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젓가락질을 완벽히 구사할 때까지 밥을 먹지 말라는 명령에, 어른용 젓가락은 크고 무거워 부당하게 느껴졌어도 나는 아무 말없이 동생을 응원한다. 아버지는 적당함을 넘겨 취한 채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도장에서 쓰이는 '죽도'가 문 옆에 놓여 있다. 동생과 나의 전용으로서 매타작을 위해 놓인 매는 합당하거나 때로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매를 맞는 이유의 대부분은 형제의 다툼이었기에 우리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지 않아야 하는 타협점을 고민했다.
아버지는 그 시절, 시대의 피해자가 맞지만 주취폭력은 합당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언성을 높일 때면 나는 동생을 옷장 이불 속에 숨긴 뒤 정말 뚫어지도록 닫힌 문을 노려보았고 소리가 잠잠해지기 전에 문이 열리면, 한 달이나 남은 개학은 상관없이 밀린 방학 숙제로 인한 매질을 당해야 했다.
간혹, 나의 방문이 열리지 않고 소리가 잠잠해져 안방으로 가려거든 신발을 신어야 했다. 반드시 어떤 것 하나는 제 모양보다 부서지고 찌그러지고, 깨져 나뒹굴고 있는데 방바닥에 엄마가 울고 있어도 결코 맞은 곳은 없었다. 모든 걸 집어던져도 엄마를 맞추지 않는, 그 마지막 끈을 아버지는 그나마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시야에 총구가 들어온다.
다른 국가도 아닌 한국에서 총알이 든 총구가 자신에게 겨눠지는 경험을 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영화처럼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엔 어린 내가, 꿩을 잡는 가스 충전식 공기총이 일직선인 방향으로 나를 향할 때 느낀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귓 속에서는 둥둥- 북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 이후, 마을의 대나무 숲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공포가 훨씬 가벼웠을 만큼.
술에 취해 차를 타고 동네를 샅샅이 누비는 아버지의 헤드라이트가 내가 숨은 자리를 향할 때마다 들리지도 않을 숨을 참았던 나는, 하늘을 살펴 달이 뜨지 않음에 안도했다. 어째서 경찰이 아버지에게 총기 소지 허가를 내줬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안도.
새벽을 틈 타 돌아간 집에 밤새 날 기다리던 엄마 뒤로, 아버지는 곯아떨어져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키가 제법 자란 뒤,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눈높이가 낮을 무렵. 드물긴 해도 꾸준한 주폭에 대응하는 방법은 여의치 않았다. 참으로 멀쩡하게 성장해준 대견한 동생이 체육중학교로 진학을 했다가 잔뜩 망가져 돌아올 때에도. 그것은 마치 연례 행사와 같은 간격으로 일어났다.
또다시 일어난 일방적인 폭발에 나는 '제압할 수 있다.'고 직감했다. 엄마에게 던져지는 소주병은 그렇게 꾸준했는데도,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명중하지 않았다한들 공포의 무게는 병의 무게와 같았다. 손에 들린 병과 엄마 사이에 내가 우뚝 서자, 처음 일어난 쿠데타에 당황한 아버지는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어디서 감히 아버지를 손대느냐고 말했다.
동생은 마음이 다쳤다.
운동부에 소속된 어쭙잖은 나이의 것들은 권력으로 모든 것을 휘두르다, 내 동생도 그렇게 날에 베이고 말았다. 잠 못 이루고 두려움에 떠는 동생이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된 것은 그때쯤이었으니 비로소 가족은 더 중요한, 집중할 문제가 생겼다.
동생이 어느 정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때쯤, 아버지는 방심했다. 가정을 정상적인 궤도로 되돌리고 나서, 다시 본인의 감정을 폭발시키기로 마음 먹은 듯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높아진 언성에 뒤늦게 밖으로 튀어나가자, 동생은 커다란 빗자루를 휘둘러 아버지를 때렸다.
그 순간, 난 어떤 두근거림이 있었다.
어떤 종류의 구원 같기도 했다.
정당화될 수 없는 아버지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패륜의 그것이 주는 심적 딜레마가 나를 덮쳐도, 용솟음치는 카타르시스에 몸을 떨고 있었다. 동생은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잠시 몸을 떨다 말리러 달려가기가 무섭게, 휘둘러지는 빗자루를 막던 아버지의 주먹은 부러졌다.
솔직히, 내 세상이 온통 당신이었던 건 억울했다. 분노에 찬 눈으로 당신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던 내게 그대는 엄청난 공포였고 악(惡)이었다. 도리어 당신에게 행해진 일 역시 옳지 않았어도 어느 누구의 손을 든다면 나는 그대로 깊은 심해에 떨어질 것만 같아, 초연함 속에 숨어 매달려본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다만, 그리고 어쩌면 내가 진작 할 수 있던 일들은 없었을까. 젓가락질을 자유분방하게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떠오르는 기억을 외면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는 있을까.
그래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무겁고 힘겨운 고백을 토한다.